유영균 대전도시공사 사장

대전기상청 홈페이지의 자료를 검색해보니 30년 간(1981~2010년) 대전의 7월 평균최고기온은 29.0℃, 8월은 29.8℃였다. 근대적 기상관측이 시작된 이래로 가장 더웠다는 작년 기록을 보니 평균기온과 최고기온이 지난 30년간 평균값보다 최고 4℃ 가까이 올라 2018년 8월 평균최고기온은 33.7℃에 달했고 작년 8월 15일의 39.4℃는 대전에서 기록된 가장 높은 기온이다. 평균기온으로 보나 최고기온으로 보나 작년은 정말 엄청나게 더웠다는 말 외에는 설명이 어렵다. 작년 여름에 내성이 생긴 탓인지 평년과 비슷하다는 올여름이 그다지 덥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기상청 홈페이지의 자료를 좀더 자세히 살펴보면 작년 더위에 버금가는 여름의 기록이 있는데 1994년이다. 7월 평균 최고기온은 34.5℃로 2018년의 더위를 능가한다. 나는 당시 한참 개발이 진행 중이던 둔산신도시 현장에 근무하고 있었는데 혹시라도 더위가 안전사고로 이어질까봐 걱정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사실 온도만으로 본다면 최고기온이 40℃를 넘는 지역은 세계 도처에 있다. 그런 곳에서 어떻게 사람이 사는지 걱정하기도 하지만 고온(高溫)과 다습(多濕)이 함께 찾아오는 우리나라 여름의 무더위만큼은 아니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집짓는 일'로 직장생활이 대부분을 보낸 경험에 따르면 주택사업자들이 겨울철 난방의 효율을 높이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단열기술을 개발해왔지만 여름철 냉방의 효율을 고려한 설계를 도입한 것은 최근의 일이다. 우선 추위를 막는 게 급했지 더위는 다음 문제였다.

지금이야 사무실이나 가정마다 성능 좋은 에어컨이 설치돼 있지만 달달거리는 선풍기 한 대로 온가족이 땀을 식히던 것이 불과 얼마 전이었고 선풍기마저 귀했던 것이 한세대 전의 사정이다. 경비원 눈치 보면서 은행창구에서 에어컨 바람을 쐬던 모습은 50대 이상이면 누구나 기억속에 남아있는 여름 풍경이었다.

여름용품이라고 해봐야 부채와 죽부인이 전부였던 시절에 어떻게 7~8월 무더위를 견뎌냈을지 새삼 부모님 세대와 그 선대가 대단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물론 고관대작들이야 한여름에도 서빙고(西氷庫), 동빙고(東氷庫)에 보관했던 얼음으로 시원한 냉차를 즐겼다지만 평범한 백성들은 어스름한 저녁에 등물을 끼얹는 것이 고작이었을 것이다.

배가 고파도 급히 먹지 않고 비를 맞아도 뛰지 않았던 사대부들의 피서는 어땠을까? 탁족(濯足)과 청선(聽蟬)은 전통적으로 선비들이 더위도 피하고 정신도 수양하던 방법이다. 바람 좋고 물 맑은 심산의 정자를 찾아 계곡물에 발을 담그는 것은 더위를 피하는 것뿐 아리라 세상살이의 먼지(世塵)도 함께 씻어낸다는 의미가 있었다. 어지간한 고을마다 선비들이 모여 탁족하면서 시를 읊던 탁족회(濯足會)가 있었을 정도로 보편적인 피서법 이었다. 청선은 매미소리(蟬吟)를 즐기는 것이다. 지금은 여름곤충이지만 옛사람들은 매미를 가을의 전령으로 여겼고 매미의 울음을 들으면 "이제 여름이 지나가는 구나" 하면서 마음으로 더위를 물리쳤다고 한다.

요즘 같은 세상에 탁족이나 청선을 피서법으로 추천할 수는 없지만 달랑 부채하나만 들고서도 고온과 다습이 더해진 한반도의 여름에 맞섰던 옛 어른들의 지혜와 인내가 새삼스럽게 다가온다. 한시 좋아하는 친구가 읊은 여름시 가운데 탁족과 청선의 여유가 느껴지는 글귀가 있어 옮겨본다. 계절이 바뀌는 것을 어찌 사람이 관여할까 / 푸른 계곡에 발 담그고 매미소리나 즐겨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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