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화로 추정되는 화재로 불타고 있는 프랑스 파리 생 쉴피스 성당. 연합뉴스
방화로 추정되는 화재로 불타고 있는 프랑스 파리 생 쉴피스 성당. 연합뉴스

서정적인 감성을 불러 일으키는 우리말 '반달'의 이미지는 유럽으로 넘어가면 이질적인 느낌으로 돌변한다. 고등학교 세계사 시간에 얼핏 들었음직한 반달족 그리고 이즈음 세계 곳곳의 뉴스를 접할 때 언급되는 반달리즘이라는 용어의 선입견은 무엇보다도 으스스하고 섬찟하다.

고대 게르만족의 일파인 반달족이 폴란드 남부에서 이베리아 반도를 거쳐 북아프리카로 옮겨 거기에 반달 왕국을 세웠는데 455년 로마를 침공했다. 그렇지 않아도 오랜 세월 반달족에 대한 부정적 인상이 강했던 터라 약탈자, 문화파괴자로 간주돼 그리스·로마문화를 최고의 이상으로 삼았던 르네상스 이후 이런 인식은 더욱 널리 퍼져 굳어지게 됐다. 고정관념이 이러함에도 역사연구가들은 반달족의 로마 침공 시 문명파괴와 약탈이 그렇게 심하게 자행되지는 않았다고 주장한다. 1794년 프랑스 주교 앙리 그레구아르가 처음 사용했다는 반달리즘이라는 용어는 프랑스 혁명 이후 혼란기에 가톨릭교회 예술품과 건축물을 마구 파손한 군중들의 무분별한 행위를 반달족의 로마침공에 빗댄 것으로 이후 오늘날의 의미로 정착됐다. 당시 프랑스 군중들은 노트르담 성당 파괴도 시도했는데 빅토르 위고 등 예술가, 지식인들의 분투로 막아낸 것 역시 대 반달리즘 투쟁 역사에 기록된다.

사회변동과 혼란은 반달리즘 창궐의 호재가 된다. 특히 민족과 계층 간 갈등, 종교적 대립으로 부추겨지는 반달리즘은 21세기 들어 아프가니스탄 탈레반 정권이 바미얀 석불을 무너뜨렸고 IS세력의 메소포타미아 유적 파괴 등으로 비화되고 있다. 우리나라는 몽고 침입과 임진왜란 당시 약탈과 만행을 비롯하여 조선말기 개방요구를 빙자한 열강의 문화재 약탈과 훼손으로 뚜렷하게 각인되고 있다. 이런 현상은 지금에 와서도 크게 다르지 않다.

중세에서 비롯된 이 파괴적인 개념의 끝은 언제일까. 그간 근대화를 표방한 무문별한 개발과 전통문화 멸실 행태는 물론 지금도 신앙이 다르다는 이유로 타 종교문화재를 폄훼하는가 하면 자연경관과 도시 미관을 해치는 도심 속의 반달리즘은 여전히 끊이지 않고 있다. 무심코 버린 쓰레기, 생각 없이 훼손시킨 시설물 그리고 크고 작은 환경오염 행위로 우리는 아무 생각 없이 하루하루 반달리즘의 늪에 깊이 발을 담그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한남대 프랑스어문학전공 명예교수·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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