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기철 대덕대학교 교수

"일단 열어봐야 알겠지만 위암인것 같습니다."위 내시경 결과를 보러간 자리에서 위암 진단을 받고나니 머리속이 어지러웠다. 머리속 한쪽에서는 "내가 암이라니?, 내가 무슨 잘못을 했는데?, 내가 과연 살 수 있을까?" 하는 걱정도 들었지만, 기가 막히게도 다른 한쪽에서는 또 다른 기대가 모락모락 피어올랐다. "다시 한 번 유체이탈을 시도해 볼 수 있는 기회가 돌아왔구나!"

나는 어려서부터 사후세계나 유체이탈 같은 것에 관심이 많았다. 그래서 한때는 밤을 세워가며 관련서적과 등을 탐독하기도 했고 인터넷 유체이탈 동호회에서 활동하기도 했었다. 유체이탈을 소개하는 책을 보면 그곳에는 실제 많은 경험자들이 임사체험이나 유체이탈을 수술도중 많이 겪는다고 쓰여 있었다. 그러던 중 20년 전쯤에 콩팥 제거 수술을 받은 적이 있었다. 사실 그 때도 수술당시 유체이탈에 대한 기대는 많이 했었지만, 첫 수술이라 너무 경황이 없어서 제대로 준비하지 못하고 수술대에 올랐었다. 그래서 그런지 기대했던 첫 번째 유체이탈 체험은 실패로 돌아가고 왼쪽 옆구리에는 30㎝ 짜리 흉터만 남았었다. "이번 위암 수술에는 반드시 성공하고 말리라!"

얼마 후 서울 S종합병원에 입원해서는 며칠 동안 각종 검사를 하며 수술대에 오르기만 기다렸다. 드디어 D-Day 날이 밝았다. 아침 7시 건장한 남자 간호사 2명이 병실로 들어왔다. 내 옷을 모두 벗기고 가운하나만 입혔다. 링게르 병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는 나를 통째로 들어 환자 이송용 침대로 옮겼다. 병원복도를 지나 수술실로 가는 길에 TV드라마에서 본 것처럼 병원 복도천정 전등들만 눈앞에서 지나쳐갔다. 집사람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따라오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수술에 대한 공포보다는 유체이탈에 대한 기대가 더 컸기 때문에, 이번에는 실패하지 않기 위해서 책과 유투브에서 본대로 철저히 준비하고 있었다. 머리속으로 다시한번 준비과정을 되새겼다. "△마음을 편하게 갖는다 △가장 편한 자세로 마취에 임한다 △마취에 들어가는 순간 의식을 집중해 영혼으로서의 의식이 깨어난다고 끊임없이 생각한다." 기회는 날이면 날마다 오는 것이 아니었기에 수술 대기실에서 기다리는 1시간 동안 유체이탈의 준비과정을 다시한번 머리속으로 상기했다. 수술대기실에서 앞에 있던 환자들이 하나씩 수술실로 들어갔다. 드디어 내 침대로 간호사들이 다가와서는 스타킹을 신기기 시작했다 (수술 중에는 다리로 피가 흐르지 않는 것을 막기 위해서 압박 스타킹을 신긴다). 수술실로 들어갔다. 주변에 의사들 끼리 뭐라고 이야기하는 소리가 들렸다. 의사들이 이름과 병명을 물어 본다. "정기철씨 위암 맞습니까?" "네" 이상한 마스크 같은 것으로 내 코와 입을 막는다. 마스크를 통해 마취 가스가 들어오는 것을 느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갑자기 정신이 말똥말똥해 진다. "어? 이번에는 왠지 유체이탈이 가능할 것 같은 느낌이 팍팍 온다."

눈을 떴다. 병실이다. 집사람과 큰놈이 걱정스레 내려다보고 있었다. 배가 무지 아프다. 아무 기억도 나질 않는다. 내가 유체이탈을 한 기억도…, 유체이탈을 해서는 하늘을 날아다니는 기억도…, 그냥 배만 아프다. 너무 너무 아프다. 에휴! 이번에도 유체이탈은 커녕 배 한가운데 지난번 옆구리 보다 더 큰 흉터만 남기고 아무런 성과 없이 끝이 난 것 같다. 하여간 이렇게 기대했던 내 두 번째 유체이탈의 시도는 결국 물거품이 되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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