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승혜 대전시립미술관장

와유(臥遊)는 방에 누워서 세상을 유람한다는 미술이론의 개념이다. 산에 오르지 않고, 산이 그려진 미술품을 보고 영혼의 정화에 이르는 상상력을 발휘된 감상이 바로 와유의 미술세계다. 사람들은 작은 그림 속의 산에서 자유롭게 노니는 상상력으로 천지자연의 조화를 깨닫는다. 와유는 깨달음으로 가는 미적 감상방식이다.

한국사람들은 한국화의 주제로 산을 사랑한다. 그림을 보며, 산행을 하는듯한 정신세계를 음미한다. 산행은 한국이라는 토양 속에서 묻어난 한국감성과 통한다. 한국은 지정학적으로 70%가 산이다.

한국인이 지정학적 위치를 인식하는 사유방식을 살펴보면, 산에 대한 관심과 지향이 강하다. 한국인은 시간이 날 때마다, 산에 오른다. 산에 오르고 나면, 몸도 튼튼해지고, 마음도 맑아진다는 믿음이 있다.

산에 가는 것은 일상 속에서 정화의 의식과 같다. 산행의 저변에는 북방의 샤머니즘이 있다. 산에 들어간다는 것은 일종의 정화의식이다. 속세에서 성스러운 곳으로 이동하여 심신을 정화시킨다는 믿음이다. 많은 한국사람들이 틈날 때 마다 산에 가는 이유는 심신의 정화다.

대전에는 계족산, 보문산, 식장산, 장태산 등이 각자의 아름다움을 자랑한다. 많은 사람들이 주말마다 등산 약속을 하고, 등산을 다녀와서는 어김없이 다음에 또 등산을 갈 날짜를 정한다. 산에 간다는 것은 세속의 시간을 정화하는 의례가 일상화된 생활미학이다.

한국미술에서 산이 성스러운 공간이라는 인식이 시각화된 예를 보자.

백제의 산수문전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세상을 표현하는 정방형의 구획 안에 산이 가득 차 있다. 이를 걸어가는 도사가 보인다. 산을 절반, 강을 절반 배치할 수도 있었고, 혹은 산을 작게 배치하고 강을 넓게 배치할 수도 있었다. 산수문전은 산이 전체화면을 가득 채우고 있다. 백제의 용봉향로도 산의 모양으로 이상세계를 구체적으로 시각화 했다.

산을 간다는 것은 도교적인 세계관도 내재되어 있다. 산은 불로장생의 장소로서 인식되었지만, 한국과 중국에 다소 차이가 있다. 중국의 도교적 세계관은 산이 바다 위에 있다는 가정이다. 중국에서 이샹향이 된 산은 바다 위에 있는 산으로, 진나라 때에 불로장생의 산을 찾아서 바다로 떠났다는 기록이 있다.

반면 한국에서 바다 위에 산이 있다는 개념보다, 실제의 산 자체를 신격화한다. 계룡산과 지리산은 도교적 상징성을 가진 신성한 장소가 되었다.

시대가 흐르면서 산행은 중첩적인 상징성을 가진다. 고려시대 사람들은 산사가 위치한 산을 극락정토로 인식하였고, 산에 간다는 것은 극락정토에 가는 수행의 여정으로 생각했다. 특히 금강산은 현세의 극락정토의 정화로 생각하여, 금강산에 가는 것이 극락정토로 가는 것으로 염원의 산행이 되었다.

조선시대 사람들은 불교에서 유학으로 가치관의 기준을 전환시키면서, 주자의 무이구곡과 같이 유학적 깨달음에 도달하는 산행, 자국에 대한 중요성을 인식한 후에는 자아인식의 확립으로 진경산수의 산행을 추구하기에 이른다.

20세기에 이르러 대전충남에 가장 강한 뿌리를 두고 있는 한국화가들도 산의 정수를 그려냈다.

이상범 화백은 한국땅을 걷는듯한 산행이 평생의 주제였으며, 한국화의 거두로서 활동하는 조평휘 화백은 웅장한 준법과 필법으로 산의 기세에서 정신의 힘을 내포한 산을 그린다.

대전 출신으로 대한민국예술원 회원으로 활약한 민경갑 화백은 산을 평생을 주제로 하면서도 세계미술사의 시각언어로 통용되는 모던함이 깃든 형태와 색채의 산을 추구했으며, 이종상 화백은 한국의 정신성을 집요하게 추구하며 역사성이 깃든 실경의 핵심을 그려냈다.

산행은 중층적인 역사성을 포괄한 한국화의 핵심주제이며, 와유는 작은 화면에 그려진 산을 통해 무궁무진의 세계로 가는 자유의 열쇠다.

이제 우리는 한국화 앞에 서서 깨달음에 성큼 다가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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