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이가 들면 모두 현명해지는 줄 알았다. 이런 저런 삶의 곡절을 겪은 뒤 노년에 이르러 욕망에서 벗어나면 세상과 인간을 균형 잡힌 시선으로 바라보고 경륜과 성찰에서 우러나오는 반듯하고 침착한 사고와 행동으로 존경받는 어르신이 되는 것으로 여겼던 것이다. 고등학생 시절 선생님들은 지금 생각하니 기껏해야 40대 초·중반이었을 텐데 그 당시 얼마나 삶을 달관한듯 한 노숙한 표정과 언행을 보이셨던지… 그래서 그분들보다 더 나이가 들면 예지와 절제, 침착과 평화가 몸에 밴 노인세대로 자연히 접어든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고령사회가 급속히 진전되면서 '젊은 노인'의 등장 역시 가속화되고 있다. 거기에 이른바 '폭주노인'이라는 개념까지도 나타나면서 갖가지 사회문제를 일으키는 계층으로 인식되고 있다. 나이에 걸맞는 생각과 언행으로 존경받는 '어르신'의 자리에 이르는 길은 그리 수월치 않은가 보다.

#. 옛 샘물로 다시 돌아온 노인은/ 변화무쌍한 나날들에서 나와 영원한 날들로 들어간다/ 젊은이들 눈에서는 불꽃을 보지만/ 노인의 눈에서는 빛이 보인다. - 빅토르 위고 '잠든 보아즈' 부분.

19세기에 활동했던 위고의 이 시는 사려 깊고 예지에 넘치는 선량한 노인, 가정은 물론 사회에 덕을 베풀면서 살아온 날들의 체험에서 비롯되는 지혜를 전파하고 방황하는 사회에 나침판과 등불이 되는 전통적, 이상적인 노인의 이미지를 그려 보인다. 젊은 날, 격정의 운명과 신산한 풍파를 겪고 노년에 이르면 슬기와 분별을 갖추게 된다는 오랜 통념은 이제 수정이 필요할까. 급변하는 사회변화의 소용돌이 속에서 늙어가는 신체로 새로운 세대와 문물로부터 소외되어 충족되지 못한 욕망의 잔재가 거칠게 드러나는 '미숙한 노인'들의 존재는 종전의 노인관을 바꾸어 놓는다.

#. 유종호 교수가 근래 펴낸 산문집 '그 이름 안티고네'의 한 대목에서 노년이 할 수 있는 사회적 기여를 적시하고 있다. 연륜과 경험에서 나온 장기적 안목을 제공해 젊음의 혈기나 성급함을 조정하는 역할을 권면한다. 사회를 이끄는 한쪽 날개는 '고해(苦海) 장기체류자'인 노인들의 경험적 통찰에 귀 기울임으로써 가능할 것이고 초롱초롱한 새싹들에게 간헐적으로 산타클로스 노릇을 할 수 있다면 행운이라고 했다. 행운의 노인이 되기는 왜 이리 어려운가. <한남대 프랑스어문학전공 명예교수·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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