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려한 뮤지컬 무대 위에서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것은 단연 주연배우다.

주연보다 한 발짝 뒤에 서있지만 뮤지컬에 없어선 안 될 또 다른 주인공이 바로 ‘앙상블(ensemble)배우’다.

‘함께’, ‘조화’라는 뜻을 가진 앙상블은 코러스, 군무 등으로 공연을 더욱 풍부하게 하는 역할이다.

역할의 이름도, 솔로 넘버(노래)도 없지만 묵묵히 자신의 역할을 해내는 그들은 공연 완성을 결정짓는 주요 배역이다.

육군 창작 뮤지컬<신흥무관학교>에서 군앙상블 배우를 맡아 ‘신흥무관학교 학생’으로, ‘일본군’으로, ‘만세운동을 하는 선비’로 무대 곳곳을 누볐던 앙상블 배우 박진수(26) 씨를 만나봤다.

육군 창작 뮤지컬 '신흥무관학교'에 앙상블배우로 참여했던 박진수 씨 사진=정민혜 기자 jmh@cctoday.co.kr

앙상블 배우는 많은 역할을 맡기 때문에 각자 가지고 있는 의상과 소품이 많아 깜빡 한눈을 팔았다가는 무대를 망치기 쉽다.

박 씨는 “무대 뒤에서 준비할 때 급하게 의상을 갈아 있는 경우가 많은데 먼저 옷 갈아입은 친구가 있으면 ‘옷! 여기 있습니다!’, ‘소품!’하고 서로 챙겨주기도 했던 것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회상했다.

당시 제1포병여단 중위로 근무했던 박 씨는 뮤지컬 앙상블 배우로 참여했던 그 공연을 평생 잊지 못할 기억이라고 말한다.

다수의 군(軍)배우들이 참여한 뮤지컬<신흥무관학교>는 3·1운동 및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기념해 육군이 주관한 작품이다.

2018년 초연 이후 143회 공연, 누적 관객수 11만 명을 기록하며 전국각지에서 사랑받았다.

군뮤지컬이 앵콜공연까지 한 것은 이례적이다.

이렇게 <신흥무관학교>가 선풍적인 인기를 끈 이유는 뭘까.

박 씨는 “군대 조직 체계가 어떻게 보면 가장 단단하고 수직적이다. 그 안에서 외부배우들을 받아들이고 그들과 군인집단이 서로 필요한 정보들을 공유하고 주연배우인 맏형들이 경험을 나누면서 수직적이지만 때론 수평적으로, 유기적으로 움직이면서 끈끈한 정이 생겼다. 배우들끼리 친밀감이 높으니 좋은 작품이 나온 것 같다”고 말했다.

군배우들 대부분이 연기 혹은 무용 전공생이지만 박 씨는 대학에서 정치외교학을 전공한 사회과학도 출신이다.

어렸을 때 꿈이 ‘개그맨’인 그는 무대에 서는 것을 항상 꿈꿔왔다고.

고등학교 재학시절 MC를 맡았던 경험을 통해 무대에 섰을 때 행복하다는 것을 느낀 박 씨는 부모에게도 자신의 꿈을 얘기했지만 결국 반대에 부딪쳤다.

그렇게 대학에 진학한 박 씨의 대학생활은 그다지 행복하지 않았다. 그러던 중 사관학교를 졸업해 대위로 복무하고 있는 친형을 보며 직업으로서의 군인도 매력이 있다고 생각해 학군단(ROTC)에 지원하게 됐다.

대학졸업 후 장교로 복무하면서 우연한 기회로 공연 소식을 알게 된 그는 1·2차 오디션을 거쳐 <신흥무관학교> 팀에 승선했다.

공연 이후 그는 개그맨이 아닌 ‘뮤지컬 배우’라는 새로운 꿈을 꾸게 됐다.

대학을 졸업하고 평범하게 취업을 준비할 수 있었지만 오히려 더 힘든 길을 택한 셈이다.

그는 “어렵고 힘들다고도 주변에서도 많이 얘기하지만 그래도 제가 행복한 일을 할 수 있다면 힘들어도 감수를 해야한다”고 의지를 밝혔다.

부모님이 <신흥무관학교> 공연을 보고 눈물 흘렸다는 얘기에 용기를 낸 박 씨는 이제 진짜 배우로서 걸음을 떼기 시작했다. 반대를 하던 부모님도 공연 관람 후 가장 든든한 지원자이자 조력자가 됐다.

지난달 말 군을 전역한 박 씨는 “군배우라는 타이틀을 떼고 앞으로 배우로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것을 스스로 고민하는 시간을 갖고, <신흥무관학교> 공연을 하면서 부족하다고 느꼈던 안무·보컬적인 부분을 채우기 위해 레슨을 받는 등 일단은 배우는데 많은 시간을 투자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배움의 길을 걷는 도중 어느 정도 스스로 도전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 많은 관문들을 도전할 것 같다”고 덧붙였다.

정민혜 기자 jmh@cc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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