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주형 을지대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

일을 마치고 집에 들어서는 순간, "아빠!" 라는 소리와 함께 기다렸다는 듯 막내 아이가 달려와 안긴다. 큰 아이는 어느 덧 컸다고 "오셨어요?" 하고 소파에 앉은 채 반긴다. 둘째 딸은 하고 있는 일에 몰두하다가 "아빠 왔다, 오늘도 잘 지냈어?" 라는 필자의 질문을 듣고서야 고개를 끄덕이며 "응" 한마디로 답한다. 2~3년 전만 하더라도 현관에 들어선 아빠를 향해 우르르 달려와 안기고 뽀뽀하며 반기던 아이들이었는데, 조금씩 달라지고 있는 모습에 서운함이 느껴진다.

이러한 마음도 잠깐, 아이들은 저녁밥을 먹은 후 바로 놀이터로 향한다. 이웃 동네 친구들과 놀기 위해서다. 이 것 저 것 골고루 먹으라는 아빠의 말은 들은 둥 마는 둥 대충 먹고 나가버린다. 저녁 식사시간에 이런 저런 얘기도 하며 먹여주기도 하던 밥상의 즐거움은 어느새 친구들과의 놀이터 놀이에 빼앗겨 버렸다.

저녁 여덟시가 다 되어서야 집으로 돌아온 아이들은 배고프다며 간식을 주문한다. 한 녀석은 TV를 보여 달라며 떼를 쓰기도 한다. 동화책 한 권을 읽고 잠자리에 들기를 바라는 필자의 간절한 마음은 피곤해 하며 투정하는 아이들의 모습 앞에 둔감해진다.

어느 하루, 이대로 두고 볼 수만은 없겠다는 생각이 불현 듯 머리를 스쳤다. 그래서 분주함을 벗어나 아이들 스스로 무엇인가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여겨 고민 끝에 아이들을 위한 '조용한 시간'을 마련했다. 조용한 시간에는 어떤 것을 해도 상관없지만 삼십 분 동안 자리를 뜨지 않고 아빠 엄마와 함께 가족 책상에 앉아 있어야 한다. 서로간의 약속이다. 다행히 아이들은 흔쾌히 동의해 주었다. 필자는 먼저 다섯 가족이 앉을 수 있는 가족 책상을 비교적 저렴한 가격으로 구입했다. 그리고 주어진 삼십 분만큼은 아이들에게 집중하면서 시간을 알차게 꾸려나가기 위한 계획과 지침대로 아이들을 이끌었다.

처음엔 계획대로 진행되지 않았다. 아이들은 가족책상에 앉는 것조차 힘들어 했다. 앉아서는 자고 싶다, 피곤하다는 등 징징거리기 일쑤였고, 몸을 비비 꼬는 등 어떻게든 이 시간을 모면해 보려고 갖은 술책을 동원했다. 그러나 필자는 침묵으로 일관했고, 책읽기에 집중했다. 아이들이 자리를 뜨려고 하면 약속한 바를 상기시키며 다시 앉게 했다. 적지 않은 인내심이 필요했다. 그리고 기대감으로 버텼다.

조용한 시간의 효과는 오래 걸리지 않아 나타나기 시작했다. 아이들은 가족책상에 앉자마자 무엇인가를 시작했다. 첫째 아이는 방과 후 학습 내용을 토대로 모형 만들기를 하고, 바둑 책을 읽기도 했다. 때로는 조용한 시간에 읽을 책을 미리 학교 도서관에서 빌려 오기도 했다. 둘째 아이는 그림 색칠, 스티커 붙이기에 열중했고 유치원 과제도 아빠랑 엄마랑 하나씩 해나갔다.

날이 더해질수록 학교에서 배운 내용은 물론 책을 읽고 모르는 것을 질문하는 빈도도 늘어났다. 함께 색칠해 달라고 졸라대는 귀찮은 요구마저도 반가웠다. 놀라운 것은 계속되는 변화였다. "이제부터 조용한 시간이에요" 하고 말하면 각자 할 것들을 가지고 서슴없이 가족책상으로 모였고 이제 그만하고 자자고 하면 좀 더 하면 안 되냐고 졸라대기도 했다. 게다가 삼십 분으로 정했던 조용한 시간은 때때로 한 시간을 넘기도 했다. 한번은 필자의 형편상 조용한 시간을 가지지 못한 적이 있었는데 큰 아이가 "아빠, 조용한 시간 왜 안 해요?" 라고 물었던 때를 기억한다.

평소 아이들의 학습 습관에 대해 염려하던 아내가 조용한 시간만으로는 부족하지 않겠냐는 질문을 얼마 전 필자에게 던졌다. 방과 후 엄마와 함께 하는 삼십 분의 영어 학습 시간을 제외하고 나머지는 노는 시간이었기에 걱정도 당연하다고 여겼다.

하지만 변화는 시작됐음을 느낀다. 삼십 분의 조용한 시간은 미약한 시작일 뿐 앞으로 분주한 일상을 조율하는 큰 능력이 되리라 필자는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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