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희봉 효문화신문 명예기자·시인

오늘도 모 텔레비전 프로그램 '황금연못'은 나에게 신선한 충격과 감동을 줬다. 76세 가장이 7살 연하인 아내를 칭찬하는 내용이다. 말 그대로 고마운 당신이다.

아내는 원래 보험설계사였다. 미모도 출중했다. 69살인데도 한 10년은 아래로 보였다. 다른 사람들도 다 그렇게 본다 했다. 그간 결혼 후 갖은 고생을 했는데도 말이다. 결혼과 동시에 아이를 키우기 위해 보험설계사를 접었다. 남편은 오남매를 키우기 위해 중동에 가서 일했다. 거기서 벌어온 돈으로 사업을 시작했는데 그게 잘못됐다. 설상가상으로 중풍이란 병이 찾아왔다. 대·소변도 혼자 처리하지 못하는 신세가 됐다. 이때 아내는 숨어버리고 싶다고, 도망이라도 가고 싶다고 생각했다 한다. 그런데 둥근 밥상을 펴고 옹기종기 모여 앉아서 공부하는 자식들을 보면서 '내가 이러면 안 되지' 생각을 바꿨다 한다.

이때부터 가장(家長)이 바뀌었다. 젊은 나이에 손수레를 끌고 폐휴지를 주우러 다녔다. 그것 가지고는 일곱 식구 입에 풀칠하기가 어려웠다. 생각다 못해 아내는 결심했다. 포장마차에서 호떡을 만들어 팔기로 말이다. 여러 번의 시행착오 끝에 자리를 잡았다. 거기서 번 돈으로 조그만 가게 한 구석을 얻어 김밥집을 냈다. 그렇게 가장 노릇을 한 것이 20여 년이 넘었다. 짧은 겨울해가 넘어가고 나서야 아내는 모들 일을 접고 퇴근을 했다. 하루는 아내가 끓여주었던 미역국을 손수 끓여가지고 아내의 일터인 포장마차로 갔다. '당신이 너무 추울 것 같아 내가 따뜻한 미역국을 끓여 왔다'며 내놓았다. 그걸 먹어보는 아내의 눈시울은 금방 젖어 올랐다.

부부가 살아갈 근원적 바탕은 사랑과 이해다. 사랑한다는 것은 행동으로 보여주고, 상대방의 장점을 인정해 주고 칭찬해 주는 것이 우선이다. 부부는 경쟁자가 아니다. 서로의 단점을 보완해 주는 관계이다. 부부는 상대방을 위해 희생하는 것이 아니고, 봉사하는 정신으로 살아갈 것을 요구 받는다. 부부는 차지한다기보다는 붙잡아주는 역할을 해야 하는 관계이다. 이런 정신으로 살아가는 그들이기에 그들의 앞날은 밝을 수밖에 없다.

나의 아내도 여러 가지 병을 전쟁수훈자의 어깨에 붙은 견장처럼 매달고 지금까지 고생 중이다. 그런 몸으로 오십초·중반부터 손주 돌보며 가정을 이끌었다. 천식으로 밤을 꼬박 새운 날이 한두 번이었던가. 고혈압에 당뇨, 협심증, 기관지 확장증 등과 매일 사투를 벌인다. 곁에 있어주는 것만으로도 고맙다. 그래 난 가끔 빈 말 같은 참말을 말한다. '내가 이 세상에 와서 가장 잘한 일이 있다면 바로 당신을 만난 것이라고.'

그냥 뜨는 것 같은 무지개도, 금방 스러지는 풀잎 끝 이슬도, 작은 개미 한 마리까지도 그 부부는 사랑이란 이름으로 보듬고 소중히 한다. 흔히들 말한다. 멀리 있는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오히려 쉽다. 가까이 있는 사람을 사랑하기가 더 어렵다고. 그저 고맙고 감사하다는 아내 칭찬 타령이었다. 자기가 힘들면서도 내색 한 번 안했다는 아내에게 박수를 보낸다. 스튜디오 안에서 감사패를 읽는 남편의 기울어진 몸뚱이가 대견스러워 보였다. 한쪽으로 기운 몸을 이끌고 오늘도 아내 대신 집안에서 허드렛일을 하면서 가정을 이끌어 나가는 남편에게도 박수를 보낸다. 감격이요 감동이요 전율이다.

좋아하는 사람의 이름은 수첩의 맨 앞쪽에다 적지만 사랑하는 사람의 이름은 가슴에 새긴다는 말이 이 부부를 두고 하는 말인 것 같다. 이들을 보면서 부부 사이라도 마주 보고 누우면 세상에서 가장 가까운 사이지만, 등만 돌리면 십만 리 거리나 되어버리는 것이니 존경과 신뢰를 품고 참으로 서로를 위하는 마음으로 조심하며 살아가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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