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주이 대전시 기획조정실장

나의 양성평등지수는 어느 수준일까. 요즘 직장생활을 하는 중장년층에게 조직내 성차별이 있는지 물어보면 대다수 아니라고 말한다. 여성의 사회진출이 늘어 영향력이 확대되고 범정부차원의 홍보와 제도적 장치, 사내교육 덕에 차별이 상당히 해소된 건 사실이다. 최근 대전시의 한 설문조사에서 양성평등을 묻는 질문에 여성은 우리사회가 평등하다 22.5%, 보통 56.8%, 불평등 20.7%로 답했고, 남성은 평등하다 25.5%, 보통 61.4%, 불평등 13.1%에 체크했다. 긍정적 답변 비율이 중요한 게 아니라 남성과 여성의 시각차가 과거보다 상당부분 좁혀진 것만으로도 양성평등은 '합의'의 큰 진전을 이뤘다. 이쯤 되면 보다 선진적이고 심층적인 양성평등을 위해 지평을 넓혀봄직하다. 의제를 전환하지 않은 채 현재의 정책을 지루하게 고수하면 역차별 논란에다 위의 설문 결과가 퇴보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재밌는 문제를 살펴보자. 첫 번째는 오늘날 세계 모든 저소득 국가에서 초등학교를 나온 여성은 얼마나 될까다. 보기는 A. 20% B. 40% C. 60%이다. 두 번째 질문은 전 세계 30세 남성은 평균 10년간 학교를 다닌다. 같은 나이의 여성은 평균 몇 년간 학교를 다닐까로 보기는 A. 9년 B. 6년 C. 3년이다. 이같은 설문 2개는 스웨덴의 유명 통계학자 한스 로슬링이 후진국의 생활상과 인구추이에 대해 선진국이 얼마나 잘못된 편견을 갖고 있는지 지적하기 위해 만든 13개 질문 중 여성 관련 문항이다. 잘 모르겠으면 눈 감고 찍기만 해도 응답자의 33.3%는 정답을 맞힐 수 있다.

'질문 1'의 정답은 'C. 60%'다. 나라별 정답률을 보면 스페인, 프랑스, 노르웨이, 핀란드 등 유럽 선진국이 33.3%는 커녕 평균 정답률 7%에도 밑도는 4-6%다. 우리나라는 이보다 나은 10%지만 33.3%에는 한참 못 미친다. '질문2'의 정답은 'A. 9년'이다. 이 문항도 노르웨이, 핀란드, 벨기에, 스웨덴, 프랑스 등의 정답률이 8-18%로 낮다. 한국은 헝가리와 같은 32%로 고득점(?)을 기록했지만 33.3%의 벽을 넘지 못했다.

결과를 들여다보면 한국 등 개발도상국에서 벗어나기 시작한 나라는 가난한 나라의 형편에 긍정적인 시선을 보낸 걸 알 수 있다. 부유한 유럽인들은 우월의식에 빠져 지난 몇 년간 빈국의 양성평등과 교육환경이 빠르게 진화했다는 걸 간과했다.

한스 로슬링은 선진 국민들이 극히 일부 가난한 나라의 여성학대나 혐오 뉴스를 과신해 그 대륙 전체에 성차별이 만연해 있다는 고정관념에 갇혀 침팬지(33.3%)보다 못한 답을 맞혔다고 조롱했다.

외국이주여성·노동자들의 성차별과 인권유린문제가 늘고 있는 우리나라도 진지하게 받아들여야 할 대목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가정, 부서, 직장 내 양성평등은 일정 수준 용인하지만 다른 집단 또는 외국계와의 전출입·합병시에는 혼란을 겪을 여지가 높다.

우리나라는 아직 세밀한 부분에서 성차별 갈등이 나타나고 있지만 비교적 안정속에 주목할만한 성과를 내고 있다. 이 시점에서 양성평등의 관점을 확대해 의제를 재설정하고 논의를 한다면 고정관념에 갇힌 선진국민보다 훨씬 유연한 사고력을 얻을 수 있으리라 믿는다. 한국에, 아니 대전시에 사르트르와 보부아르와 같은 자유로운 영혼이 살고 있다는 상상만으로도 즐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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