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 대표 독립운동가' 신채호 선생 며느리 이덕남 여사
선생 국적 되찾으려 했을 때
관계기관, 불편한 게 뭐냐며 따져
2009년 천신만고 끝 국적회복후
조선총독부서 빼앗아간 집터
되찾아야겠다 결심…소송 제기
유공자 전체 위한 의미 있는 소송

27일 대전을 찾은 단재 신채호 선생의 며느리 이덕남 여사. 최윤서 기자
27일 대전을 찾은 단재 신채호 선생의 며느리 이덕남 여사. 최윤서 기자

[충청투데이 최윤서 기자] “신채호 선생의 국적이 없어서 유족이 불편하게 뭐냐고 오히려 되묻더라고요.”

대전지역 대표 독립운동가인 단재 신채호 선생의 며느리 이덕남(여·76) 여사가 대전을 방문해 단재 선생의 국적 회복까지 힘들었던 과거를 복기했다.

27일 이 여사는 단재 선생의 생을 다룬 지역극단 ‘새벽’의 음악극 ‘곡하고 노래하리라!-신채호와 의열단’을 관람하기 위해 대전을 찾았다. 공연 관람 전 이 여사는 기자들을 만나 현재 진행 중인 옛 삼청동 집터 반환 소송에 대한 심경을 털어놓았다.

최근 이덕남 여사와 단재 손주 2명은 불교재단 선학원과 국가를 상대로 소유권이전 등기 소송을 낸 바 있다.

이 여사는 “단재 선생의 국적이 광복 64년만에 회복됐다. 너무 오랜 시간이 걸렸다. 관계 기관들조차 나보고 왜 국적을 회복하려 하냐며 불편한게 뭐냐고 따졌다”고 회상했다. 

이어 “2009년 국적을 간신히 찾으니 그 다음엔 집터를 찾아야겠다는 결심이 섰다”며 “당시 일본 조선총독부의 토지로 단재의 삼청동 집터를 빼앗겼지만 그간 독립운동가의 땅을 무국적·무호적 상태라 찾을 수가 없었기 때문”이라고 호소했다. 그러면서 “이번 소송은 단순한 반환소송이 아닌 독립유공자 전체를 위한 의미있는 소송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덕남 여사는 1967년 신채호 선생의 둘째 아들과 결혼해 남편이 작고한 뒤 중국으로 떠났다가 15년만인 지난 4월 한국으로 돌아왔다.

이 여사는 “남편이 죽은 지 28년이 됐는데 내 인생은 늘 고난과 함께했다. 설상가상 내 남편의 가짜 아들도 등장했을 정도”라며 “재판만 10년을 했는데 남편은 죽고 없고, 재판은 해야겠고 단돈 500만원이 없어서 방 한 칸도 못 구했다”고 힘겨웠던 시절을 털어놓았다. 이어 “단재에 대한 평가가 제대로 이뤄지지 못했음은 물론 독립운동가 후손들에 대한 예우도 몹시 부족하다”며 “고향인 대전에서만큼은 그의 업적과 역사가 제대로 보존돼야 한다”고 설명했다. 

한편 대전 중구 어남동에서 출생한 단재 신채호 선생은 일제에 맞서 독립운동을 벌이다 일제에 체포돼 중국 뤼순 감옥에서 복역 중 1936년 고문 후유증으로 순국했다. 이후 '무국적자'로 남아 있다 73년만인 2009년에야 대한민국 국적을 회복했다.

최윤서 기자 cys@cctoday.co.kr

저작권자 © 충청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