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도시장에서 판매되는 한국라면. 연합뉴스

반세기도 훨씬 넘은 옛 기억이지만 아직도 맛에 관련된 추억은 생생하게 되살아난다. 인간의 오감 가운데 시각으로 가장 많은 정보를 입수한다지만 미각은 지속성과 소환 측면에서 단연 으뜸이 아닐까. 1963년 처음 맛본 라면의 식감은 여전히 어제 먹은 음식처럼 또렷하게 반추된다.

꼬들꼬들한 면발에 기름이 동동 뜨는 국물은 흡사 닭고기를 오래 끓여낸 맛이었다. 외식으로 가끔 먹는 짜장면이나 집에서 끓이는 칼국수 그리고 소면을 삶아 건져낸 국수로 한정되었던 면(麵)의 세계에 새로운 지평이 열리는 듯 했다. 발매 당시 한 봉지 가격이 10원 정도였는데 지금 통상 라면 값을 700~800원으로 치면 다른 물가에 비해 그다지 인상 폭이 높은 편이 아니다. 그 당시 영화 관람료를 지금과 비교하면 약 200배가 올랐는데 80배 인상폭은 정부의 생필품 물가 통제가 한몫 했을 수도 있다.

호불호가 엇갈리는 라면이 뱀가루를 넣어 만들었다는 황당한 가짜뉴스가 퍼진 적도 있었다. 그 때는 제법 그럴싸하게 들려 라면을 끊은 사람도 많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라면 첫 출시 후 56년, 우리 식탁에서 라면의 위상은 더없이 공고해졌다. 간식에서 주식으로 몸값이 올라가는가 하면 그 종류와 조리법에서도 반세기 동안 우리 사회 발전 양상을 그대로 보여주는 풍속사, 문화사의 일부라 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라면을 30여 년 간 삼시세끼 주식으로 삼은 어르신이 얼마 전 새롭게 화제 인물로 떠올랐다. 개인적 취향과 체질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예전에는 한 끼에 두 개씩 드셨다는데 지금은 한 개로 줄이는 동안 라면 화사에서는 정기적으로 박스째 공급해 드렸다고 한다.

라면의 발상지가 일본이라지만 일본에서는 우리처럼 건조 인스턴트 면보다는 식당에서 조리하는 생면이 더 선호되는 만큼 이제 우리는 라면을 고급화, 다양화하여 'K-누들'이라는 명칭을 앞세워 한류 붐에 동참할 법도 하다. 지난해 수출액이 4억 달러로 사상최고치를 기록한 만큼 인스턴트라면 종주국으로 완제품 수출과 함께 독특한 레시피 보급도 중요하다. 각 대륙별로 세계인의 입맛에 맞춰 특화하고 특히 스프와 토핑을 전문화, 고급화한다면 지금 이탈리아 파스타가 차지하고 있는 대중음식 분야를 파고들 여지가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한남대 프랑스어문학전공 명예교수·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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