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문화 신문>
유무형 효문화자산 조사
마을들 돌며 유적지 등 답사
도시화로 사라진 곳 아쉬워
효문화자료보감 안내서 기대

▲ 전통을 지니고 있는 효문화자산은 우리나라의 큰 자랑이다. 사진은 유무형 효문화자산 모습. 한국효문화진흥원 제공
▲ 전통을 지니고 있는 효문화자산은 우리나라의 큰 자랑이다. 사진은 유무형 효문화자산 모습. 한국효문화진흥원 제공
▲ 전통을 지니고 있는 효문화자산은 우리나라의 큰 자랑이다. 사진은 유무형 효문화자산 모습. 한국효문화진흥원 제공
▲ 양승춘 명예기자

"아들바위로 가려면 어디로 가야하나요?", "왜 미역바위라 했나요?", "이 길이 아닌가 봐요." 등등…. 지난 여름 꼬불꼬불 고갯길을 털털 거리며 차로 달렸다. 굳게 닫힌 문을 열 수 없어 되돌아오기도 했다. 뜨거운 햇볕에 흘러내리는 땀을 씻을 겨를도 없이 산을 헤매며 바위를 찾고 산소를 찾았다. 대전에서 나고 자라 중년이 되었는데도 처음 듣는 동네이름은 마냥 신기했다. 이 마을 저 마을을 돌고 돌며 부모공경뿐만 아니라 가족과 나라, 이웃을 사랑하는 효자들을 찾았다.

전통을 지니고 있는 무궁무진한 문화자산은 우리나라의 큰 저력이다. 한국효문화자료보감을 만들기 위한 초석은 역시 정신문화의 중심지 대전의 효문화를 찾는 노력에서부터 였다. 빠르게 변해가는 도시화로 사라져버리거나 잊혀져가는 곳도 있어 아쉬움도 있었지만 구석구석 숨겨진 보배로운 효문화자산을 찾아내는 기쁨은 더위를 잊게 해줬다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는 속담처럼 효자인 선조들은 어려서부터 행동거지가 단정하고 총명하며 품성이 순수하고 정직해 형제간 우애가 돈독했다. 또한 열녀는 남편이 죽자 종신토록 수절하거나 남편을 따라 자결하는 경우, 왜적의 만행에 정조 지키기 위해 죽은 경우 정려가 내려졌다. 무형자산은 구전으로 전해 내려오는 곳이 많아 장소를 찾는 것은 무척 힘든 일이었다. 주변 어르신들의 옛이야기를 들으며 기억하던 곳, 사라져가는 장소와 이야기는 이제 자료로서 확인할 수 밖에 없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잊혀지지 않도록 이정표와 내용을 정리해서 세워두는 작업이 필요하다 생각했다. 송준길 묘를 찾아 원정동으로 갔을 때에는 이정표가 반대쪽을 향해 있어 엉뚱한 길로 산을 하나 넘기도 했다. 겨우 장소에 도착하면 어둠이 내려앉아 다시 찾아가야만 했다. 그 집안의 조상존숭을 엿볼 수 있는 기회는 산소를 찾아가는 일이었다. 어느 조상의 묘는 잘 다듬어진 주위환경과 자식들을 지켜주는 전망 좋은 자리에 벌초도 살아생전 부모님 모습을 그리며 했다는 말에 울컥하기도 했다.

사람들마다 각기 사연이 왜 없겠냐만은 명문가가 아니더라도 효행상을 받지 않은 효자·효녀들은 어디에서든 찾아볼 수 있다. 선조들의 효행이나 우리지역 효에 관한 전설은 우리가 듣고 익히고 배우며 다시 후손들에게 물려줘 대대로 아름다운 문화로 잘 보존하고 계승해야 할 유산이다. 그러므로 대전 5개 구청별 효문화자료보감은 효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기초자료로 충분한 안내서가 되리라 생각한다.

양승춘 명예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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