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숙 대전공업고등학교 교사

재수생 김남우는 풀리지 않는 인생에 짜증을 내며 홧김에 나뭇단을 발로 걷어찼고 뜻하지 않게 귀신을 불러냈다. 귀신이 제안하는 수능 만점, 5급 공무원, 아이돌 출신 아내, 여배우 아내, 20대의 몸매를 하나씩 얻을 때마다 월, 화, 수, 목, 금요일을 차례로 귀신에게 내어 준다. 평일에는 귀신에게 자신의 몸을 내어주고 기억하지 못한 채로 그럴듯하게 살아진다. 주말에는 평일 동안 귀신이 살아낸 몸에 자신의 의식을 실어 신나게 논다. 교내 독서 관련 행사를 위해 준비한 김동식의 단편소설 ‘성공한 인생’.

어렵지 않게 잘 읽히면서도 작중 상황이 독특해서인지 아이들이 재미있게 잘 읽었다. 막상 독후감을 쓰려니 늘 그렇듯이 막막했나 보다. "너희가 주인공이라면 귀신한테 하루를 줄 수 있겠어?", "하는 일 없이 남이 다 해주면 성공했다고 할 수 있을까?", "일주일 중 5일을 나로 살지 못하면서도 잘 산다고 할 수 있을까?"

아이들의 대답 속에는 저희들의 욕망이 그대로 드러난다. "저는 화요일까지는 귀신한테 줄 수 있을 것 같아요." "일도 안하고 고생하지 않고 눈 뜨면 주말인 거잖아요. 오, 개꿀!" "진짜 어리석은 거 아니에요? 왜 자기 시간을 남한테 줘요." 안정적인 직업은 있어야겠고, 어렵지 않게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다면 시간과 영혼쯤이야 기꺼이 팔 수 있겠고, 비록 세상이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하더라도 내 색깔로 내 시간을 채우는 것이 맞는 것 같고. "이런 게 성공하는 거라고 얘기하는 거면 이상한 거 아니에요? 제목이 이상해요." "그치, 좀 이상하고 독특하지. 얘들아, 소설가는 답을 주는 게 아니라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이라고 해 보자. 그럼 이 소설가는 우리한테 무엇이 문제라고 말하고 있는 걸까?"

작년에 아이들과 읽었던 김영하의 에세이 ‘시간 도둑’이 떠오른다. "선생님, 너무 편파적인 거 아니에요? 스마트폰이 좋은 점도 많잖아요."라는 학생에게 "불편하고 극단적인 얘기를 해야 사람들이 움찔하거든"이라고 답했었다. 시간 도둑의 질문 '어떻게 우리의 소중한 시간을 지킬 것인가'에 대한 고민은 소설 ‘성공한 인생’과 연결된다.

'현대인들은 지금 자신의 시간을 스마트폰 개발자에게 돈을 내주면서까지 빼앗기고 있다'라고 한다면 그래도 김남우는 세상이 말하는 성공을 얻었으니 손해는 아니라고 할 수 있겠다. 하지만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주어진 24시간 앞에 누가 갑으로, 누가 을로 사는 것이냐고 묻는다면 우리는 돈을 지불하면서도 영혼을 빼앗기는 을로 사는지, 일주일 중 5일을 귀신에게 맡긴 '김남우'로 사는지 돌아볼 일이다.

그저 스마트폰 얘기만은 아니다. 쉬지 말고 하루를 빼곡하게 공부하고 일하라는 얘기가 아니다.

"교실에 있어도 영혼이 없으면 수업 안 들은 거니까 수업에 빠진 걸로 처리할 거야"라며 수업 중 숙면을 취하는 아이들에게 협박했고 "왜 있는데 하지 않느냐"라며 통탄했었다. 그 공간에 처한 시간 사용자의 태도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내 돈 갖고 내가 쓰는 데 무슨 문제야'라고 말하는 사람치고 아름답게 돈 쓰는 사람 적은데 '내 시간 갖고 내가 쓰는 데 무슨 문제야'라고 외치고 싶다면 많이 조심스러웠으면 좋겠다. 시간과 공간에 대한 책임과 윤리의 자세로 돌아볼 수도 있어야 한다. 심지어 혼자 있을 때의 자기 모습이 진짜 자신이라는 말을 믿기도 해야 한다.

아이들 대부분은 김남우가 어리석다고 비난하지만 비난의 손가락을 제외한 나머지는 자신에게 더 많이 향하는 법. 아이들의 시간이 귀신의 시간이 되지 않기를, 돈 내고 뺏기는 피해자의 시간이 되지 않기를 바란다. '온전한 나'의 시간으로 성공하는 인생이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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