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희봉(시인·효문화신문 명예기자)

당신의 세월은 고난의 연속이었습니다. 검게 탄 실의도, 굶주림도 감싸 안으며 이겨온 세월이었습니다. 하루도 편히 잠을 자본 일이 없었습니다. 그래도 오직 가족 생각뿐이었습니다. 당신의 뒤에는 한 여자와 네 아들이 있었습니다. 자나깨나 가족 생각뿐이었습니다.

4형제를 떡으로 키웠습니다. 다음날 나갈 떡을 준비하기 위해 밤을 지새운 날이 부지기수였습니다. 17살 때부터 떡을 포장해 배달하는 일을 시작했습니다. 가방끈이 짧았습니다. 가방 들 시간을 만들지 못했습니다. 주위 여건이 그걸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일찍이 부모님을 여의고 홀로 서기를 했습니다. 먼 친척뻘 되는 사람이 보내준 곳이 보육원이었습니다. 그게 남들은 한창 배움의 시기를 보내고 있을 열 살 때였습니다.

보육원은 당신의 삶을 다시 태어나게 해준 곳입니다. 보육원 가족들을 당신의 가족이라 생각하고 열심히 받들었습니다. 거기서 7년을 보냈습니다. 17살이 돼 원 생활을 마감하고 어느 떡집으로 들어갔습니다. 떡에 대한 공부를 어깨 너머로 배웠습니다. 돌아가는 기계에 몸을 부딪쳐 상한 일도 한두 번이 아닙니다. 손가락은 마디마디 옹이가 생겼습니다. 손바닥은 꺼끌꺼끌해졌습니다. 겨우겨우 얼마간의 자금을 마련한 후 조그만 떡가게를 차렸습니다. 그간 결혼도 하고 4형제를 낳았습니다. 하는 일이 힘겨운 일이라서 4형제를 키우면서 관절 수술도 여러 번 했습니다.

가게 계약 시 사기를 당해 고초를 겪었습니다. 세상에 믿을 사람이 적다는 것을 이때 배웠습니다. 그래도 그런 사람보다는 좋은 사람이 많았다고 말씀하십니다. 세상은 당신 마음 같지 않았습니다. 그걸 보다 못한 나(큰아들)는 사법고시를 포기하고 떡집 보조를 하기로 했습니다. 당신은 말렸습니다. 당신을 도와드려야 한다는 일념으로 결정한 일입니다.

그간 7번의 무릎 수술을 했습니다. 이제는 검버섯이 껌처럼 얼굴 전체에 눌러 붙었습니다. 어머니가 세상을 뜨고는 가족의 대들보는 오직 당신뿐이었습니다. 40여 년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아카시 하얗게 피는 계절이 이토록 가슴 시린 이유는 어머니의 빈 자리가 너무나 컸기 때문입니다. 자식들을 풍족하게 키우고 싶었던 아버지였습니다. 올곧게 자라도록 칭찬과 격려와 꾸중을 겸해 키웠습니다. 자식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당신의 가슴에 새겼습니다. 그때마다 햇살은 고운 물감을 풀어 산수화를 그렸습니다. 당신은 가정으로 돌아가기 위해 떡집으로 출근을 했습니다. 세찬 비바람에도 젖고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흔히 남편은 뿌리이며 아내는 꽃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당신 가정의 뿌리는 약하고 꽃은 이미 져버린 뒤였습니다. 그래서 당신이 산다는 건 열차의 좌석을 배정 받는 것처럼 운명 또는 우연이라 생각하고 살아왔습니다.

다치고도 병원에 못 가는 당신이었습니다. 그간 1억이란 빚이 있었지만 이제 오백 정도만 남았습니다. 이쯤에서 이순을 붙잡아 놓고 등불 하나 켭니다. 어제는 당신의 등을 밀다가 노트에 잘못 쓰여진 글씨처럼 지워지는 때를 보았습니다. 내 손에 닿는 거친 이순의 당신, 당신의 향기를 담습니다. 고난 앞에서도 굴하지 않고 다시 일어선 당신께 격려의 박수를 보냅니다.

큰 자식이 아버지한테 그간 고생 많았다는 감사의 표시로 '감사패'를 만들어 드리고는 박수를 받으며 방송국 공개홀을 나가는 뒷모습이 너무도 대견스럽게 느껴졌습니다. 은혜를 감사패에 오래도록 변하지 않게 새겨 아버지 가슴에 안겼습니다. 둘이는 서로 얼싸안고 눈물을 흘렸습니다. 1억, 10억을 떡값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경종을 울려주는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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