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승혜 대전시립미술관장

낙천적 감성을 가지려면, 중국의 시인 도연명의 ‘형영신(形影神)’ 시를 읽어야 한다. 형(形)은 몸, 영(影)은 그림자, 신(神)은 정신으로 해석한다. 몸, 그림자, 정신의 대화다. 몸은 사람이 수명에 있어서 언제가 죽게 돼 슬프니, 술이나 마시겠다고 말한다. 그림자가 술은 건강만 나빠지고, 좋은 일을 하면 죽고 나서도 명예가 남는다고 대답한다.

정신은 죽지 않는 사람이 없고, 명예도 시간이 지나면 잊혀진다. 그러니 낙천명(樂天命)하자고 마무리한다. 낙천명에서 낙천적이라는 말이 나오게 된다.

낙천적 감성은 지금 여기를 현재를 즐겁게 사는 태도가 핵심이다. 낙천적인 사람은 유한한 수명을 슬퍼하지 않고, 남들에게 인정받으려는 명예에 집착하지 않는다.

낙천적인 사람은 과거에 대한 후회도, 미래에 대한 불안도 적다. 후회와 불안이 없으니 현재에 감사하는 긍정적인 분위기를 만든다. 낙천적인 사람은 맑은 공기와 같아서 함께 있으면 건강해지고 행복해 진다.

이와 반대로 낙천적이지 않고 부정적인 사람은 전염이 빠르고 지독한 우울을 전파하다. 부정적인 생각에 사로잡히면 좀처럼 헤어나오기 어렵다. 낙천적 감성은 마음의 중심을 유지하는 비법을 깨달아야 한다. 마음에 중심이 있으니, 남과 비교하며 질투하지 않는다.

남을 모두 무시하는 듯한 사람은 결국 자신의 공허감을 표현하는 것이다. 마음에 중심이 없으면, 사소한 욕망에 휘둘려서 마음이 상처를 받게 된다. 부정적인 사람은 자신에 대한 공허감으로 남에 대한 폄하와 험담을 이어가고, 결국 안타깝게도 그 험담은 자신에 쌓이는 독소가 된다.

낙천적인 감성지능을 갖춘 사람은 말과 행동이 따뜻한 온기를 전해준다. 마치 악수를 하면서 안색을 보면, 부지불식간에 사람의 기운이 느껴진다. 몸이 아픈 사람, 마음이 아픈 사람, 건강한 사람, 행복한 사람, 맑은 사람, 탁한 사람. 흠칫할 정도로 사람의 기운이 파장이 돼 온다.

낙천적인 사람은 파장은 건강한 숨과 같이 규칙적이고 안정돼 있다.

예술에도 낙천적인 감성지능이 영향을 줄까? 현대미술은 사회를 비판하고, 풍자하며, 내면의 우울을 표현해서 보는 사람에게 불편함을 주어야 가치가 있다는 관점이 있다. 그러나 이것은 세계미술사에서 하나의 사조일 뿐, 현대미술의 전체는 아니다.

오히려 우리는 지금 낙천적인 예술가에게 주목해 보아야 한다. 낙천적인 감성지능을 갖춘 예술가는 현재를 인정하는 관점에서 출발한다. 낙천적인 예술가는 과거의 후회와 미래의 불안이 없이 현재를 파고든다.

후회와 불안을 일으키는 불필요한 잡념을 마음에서 제거하는 방법은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내가 주목하는 방식은 수많은 필선과 색을 수행하듯이 집적해 완성하는 집념적 태도다. 극도로 현재에 집중해 마음의 중심을 챙기는 작업방식이다.

나에게 주어진 시간과 재능을 오롯이 나에게 집중하는 극도의 정신력은 낙천적인 예술의 정화다.

누가 알아주든 알아주지 않든 그것은 나의 문제가 아니다. 남과 비교는 더더욱 무의미하다.

어떤 작품을 추천해 달라고 한다면, 망설임 없이 작가가 낙천적인가 아닌가를 보라고 하고 싶다.

낙천적인 그림을 본다는 것은 낙천적인 사람과 함께 하는 것처럼 행복한 일이기 때문이다. 예술에서 지혜를 배우자면, 예술가의 낙천적 마음을 직관하는 작품을 찾아가면 어떨까? 어찌 삶에 굴곡이 없겠는가? 현재에 집중하는 마음을 갖춘 예술작품을 보면, 나도 모르게 그 예술가처럼 현재에 집중하게 된다.

어쩌면 좋은 예술품을 선택하는 방법은 쉽고 간단할지 모른다. 작품을 그려낸 사람의 인품을 먼저 보면 된다. 작품이 곧 인격이라는 수천 년을 이어져온 동양의 미술이론의 핵심은 그만한 이유가 있다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된다. 역시 예술은 인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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