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희봉 시인·효문화신문 명예기자

이 편지를 읽고 나니 가슴이 먹먹하다. 자신을 내려놓고 가족을 위해 헌신봉사를 하늘의 뜻으로 알고 살아온 여인의 일생이 파노라마 되어 내 뇌리를 내리친다. 어쩜 우리네 엄마들은 하나같이 자신을 희생하는 것을 본업으로 생각하고 살아왔는지도 모른다.

‘아그덜 보그라. 핵교 문턱도 못 넘어본 느그 어매가 지끔 편지를 쓴다. 못된 모시매들 만나서 연애질헌다고 느그 외할아부지가 핵교 근처에는 삐끔도 못 허게 했제. 글고 밭도 매고 애기 보라고 글자캥이는 몽당연필도 못 잡아보게 했단다. 늑아부지 만나서 접방살이 헐찍에 밭두룩에서 큰놈 낳고 밥 먹으로 옹께 뒤야지가 솥뚜껑을 밀어내고 밥을 다 묵어부러서 냉수만 항그럭 퍼마시고 또 밭으로 갔지야. 그쩍에는 정지 옆에다가 뒤야지를 키웠씅께. 근디, 어느새 세월이 담박질 허고 가부렀다. 지끔은 존 시상이여야. 문 일이든지 그저 부지런히만 허먼 배 안골코 놈 밥 묵을 때 죽이라도 배부르게 묵응께. 어찌든지 부지런히만 허그라 이 느어메는 지끔 느그덜 한테 보낼라고 지 감 다듬어 놓고 편지를 쓴다.

마을 회관에서 글자도 갈차 주고 편지도 쓰락 혀서 쓰는디 아! 글씨, 이놈에 글씨가 통 맘먹은 대로 되아야 말이제? 내가 쓴 편지를 느그덜이 어찌코롬 알아나 볼랑가 모르겄다.

싱거운 겉절이는 바로 묵고 짠 지는 냉장고에 넣어놓았다가 쪼께 익으먼 묵어라. 그러고 방학 때는 꼭 새끼들 보내그라. 남새밭에다가 단쑤시랑 깡냉이도 숭거놨시야. 북감재도 밑이 잘 들었씅께 주전부리는 꺽정헐 것 웂다. 내는 우리 강아지들 고무랑 고무랑 크는 것 보는 재미로 사니께 방학 내동 있을 폭 대그라.’

편지를 읽고 나니 가슴이 뭉클하다. 내 어머니도 그랬다. 맨날 글을 못 읽어 답답하다 하셨다. 내가 조금 가르쳐 드린 덕분에 더듬더듬 읽고 쓰시는 걸로 만족하셨다. 민화투도 하시는 방법을 몰라 어지간히도 가슴을 치셨다.

학교 문 앞에도 얼씬 못하게 한 친정아버지 덕분에 한글을 몰라 얼마나 가슴이 답답했으랴. 간판 글씨도 못 읽고, 어디서 어떤 공문 같은 편지가 날아와도 가슴만 벌렁벌렁 했을 것 같다. 은행에 돈 찾으러 가서도, 우체국에서도, 증명을 떼러 가서도 무엇을 쓰라 할까 봐서 얼마나 가슴을 졸였을까. 그런 경우에 처했을 때는 갑자기 배가 아파 화장실에 가야 한다고 핑계대고 도망쳐 나오지 않았을까.

지금 70~80대 여성 중 소수는 그런 어려움을 가슴에 안고 살아오지 않았을까? 죽어라 일만 하고, 자식들 먼저 먹이려고 굶어가면서까지, 손톱이 깎을 수조차 없이 닳고 문드러져도 자식과 남편을 위해 모든 것을 헌신해 온 그 시대의 여성들에게 경의와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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