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엔디컷 우송대학교 총장

어느 주말의 일이다. 미 공군 대령 은퇴 신분으로 토요일에 방문한 미 8군 용산기지와 UN사령부의 따뜻한 호의에 만족하며 일요일 아침 9시 대전으로 돌아오는 용산발 KTX를 탔다. 아내와 함께 대전역에서 택시를 타고 안락한 집에 올 때까지도 별 탈 없었다. 짐을 모두 챙겼는지 확인한 후 택시비를 내고 기사에게 인사까지 했다. 아파트에 들어서는 순간 아내가 불길한 한마디를 내뱄었다. "내 지갑이 어디 있지?" 지갑을 택시에 두고 내린 것이다. 아내는 울먹이기까지 했다. 그도 그럴 것이 지갑 안에는 필자의 미군신분증, 외국인등록증, 조지아 주 운전면허증, 의료보험증 등 중요한 신분증이 모두 있었다.

신용카드며 현찰은 둘째 치더라도 그 많은 증들을 발급받으려면 얼마나 많은 시간과 공을 다시 들여야 하는지 눈앞이 캄캄했다. 택시비마저 현찰로 지불해서 탑승했던 택시에 대한 그 어떤 정보도 찾을 길이 없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필자는 택시에서 내렸던 그 장소로 돌아가 주변을 살피기 시작했다. 기적이라도 일어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20여분 정도 같은 장소를 서성였을 때, 정말로 기적이 일어났다. 아내가 필자가 있는 곳으로 뛰어나오며 "지갑을 찾았어요!"라고 외치는 것이다. 어리둥절해하는 필자에게 아내는 "관리실에서 연락이 왔어요. 아까 우리가 탔던 택시기사가 20분 후에 지갑을 돌려주러 다시 오겠다고 했대요"라고 설명했다. 우리 부부는 마주보고 안도와 행복이 담긴 웃음을 지었다.

여름이 온전히 오기 전, 날씨는 적당히 따뜻하고 나무들은 알맞게 푸르렀으며 지나가는 사람들은 평화로워보였다. 우리를 태웠던 택시가 우리 앞에 선 후 기사는 직접 내려 아내에게 지갑을 전해줬다. 감사한 마음에 사례를 하고자 했지만 기사는 정중히 사양하고 기분 좋은 웃음을 보이며 유유히 그곳을 떠났다. 어떤 영웅이 그 보다 멋진 모습일 것이며 더 멋지게 웃어 보일 수 있을까.

어느 유명한 최고경영자가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똑똑하거나 운동을 잘하거나 그림에 소질이 있거나 음악에 재능이 있는 사람들은 많습니다. 그러나 판단력과 진실성을 갖춘 사람은 흔하지 않습니다.' 도덕적 판단력, 우리를 돕고 싶은 호의와 진실성을 가진 흔하지 않은 사람을 만났던 일은 영원히 기억될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돈, 권력, 인기, 명성에 집착하는 요즘 세상에서는 고지식하고 세상물정에 어두운 사람들이나 선함, 솔직함, 소박함, 배려 등을 가치 있게 생각하는 것처럼 여겨져 안타깝다. 우리 모두가 보이지 않는 것들의 소중함과 가치에 대해서 한 번쯤 생각해봤으면 한다.

그 날, 우리 부부가 만났던 영웅은 특별한 사람이 아니라 평범한 사람이었다. 그렇게 평범한 사람이 영웅으로 보였던 이유는 선하고 반듯하고 솔직한 행동 때문이었다. 작은 꽃밭만 가꾸어 놓아도 그 주변과 동네가 다 환해지는 느낌을 받는 것처럼 선함, 반듯함, 솔직함을 실천하는 사람들로 인해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이 좀 더 밝고 따뜻해졌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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