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선주 농협 청주교육원 교수

정부·기관의 모든 인사 관련 기사에는 공통점이 있다. 사람 이름과 함께 어디어디 지역 출신이고, 어느 학교 무슨 학과 졸업과 같이 학연(學緣)과 지연(地緣) 그리고 무의식적으로 나타내는 성씨 관련 혈연(血緣)까지, 흔히 모두가 병폐라고 일컫는 '삼연(三緣)'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영화 '범죄와의 전쟁'에서 어설픈 조폭으로 나오는 최민식이 조직 내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하는 힘의 원천은 힘 있는 사람과 사돈의 팔촌을 따지는 혈연이다. 또 현실적으로 조직에서 학연(學緣)이라는 이름으로 사조직이 만들어지는데 현업에서 학벌은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 이유는'기회의 차이'에 있다. 똑같이 이력서를 내도 서류전형에서 걸러지고 승진에서 밀린다. 학연(學緣)이 무서운 이유는 바로 지연(地緣) 때문이다. 지연(地緣)은 학연(學緣)으로 연결된 사람 관계, 학창 시절 추억을 함께 나누었던 선후배와 동기들 또는 이전 직장에서 만들었던 끈끈한 인간관계로 만들어진 연결고리이다.

우리나라 기업의 문제 중 하나가 바로 이런 학연, 지연, 혈연을 너무 따진다는 것이다. IMF이후 금융기관을 포함한 여러 기업들이 합병 등을 하게 되었는데 서로 출신을 따져 가며 줄을 세우고, 배척한다. 특히 흡수 합병된 법인의 인재들은 승진 등의 기회에서 억울하게 제외되기도 한다. 실력이 있어도 연줄이 없거나 출신이 다르면 실력을 인정받지 못하는 경우가 있고, 실력도 없지만 출신의 연줄이 있다는 이유로 낙하산 같이 조직의 상층부로 자리에 가는 경우도 허다하다. 또 다른 문제 중의 하나는 연공서열이라는 이름으로 무능력한 사람도 나이가 많으면 능력에 상관없이 먼저 승진 시켜 열심히 일하는 직원들의 사기를 저하 시킨다는 것이다.

히딩크가 우리나라에서 성공한 이유 중 하나는 바로 학연, 지연, 혈연을 없앴기 때문이다. 즉 철저하게 실력 위주로 선수들을 뽑았기 때문에 월드컵에서 좋은 성적을 거둘 수 있었다. 그 대표적인 선수가 바로 박지성이다. 박지성은 국내 K리그에서도 사실상 외면 받았던 선수였지만 히딩크는 박지성의 재능을 한 번에 확인하고 대표팀에 불렀다. 그 결과 박지성은 3회 연속 월드컵에 나가서 좋은 성적을 거두었고, 클럽팀에서는 PSV와 맨유 등을 오가며 좋은 활약을 했다. 만약 히딩크 감독이 없었다면 박지성이라는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세계적인 선수도 없었을 것이다.

세종대왕은 조선의 미래를 위해 왕의 자문기관으로서 직접 나서서 최고의 인재를 등용하는 집현전을 만들게 되는데 이때 세종대왕은 "관직이란 내가 마음에 드는 사람을 데려다 앉히는 것이 아니라 그 임무를 가장 잘 해낼수 있는 사람을 택하는 것이다. 그것이 설령 정적이고 나에게 불경한 신하일지라도 말이다"라고 말했다. 당시 조선시대에는 지배층과 피지배층이 엄격히 구분되는 신분제도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재능이 있다면 관직에 노비도 등용하였고 그 대표적인 인물이 장영실로 조선 최고의 과학자를 만들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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