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창원 충남도립대학교 교수

우리가 현대사회에서 사는 현대인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이 물음은 ‘우리가 근대사회에 머무는 것이 아닌가? 어쩌면 근대인도 되지 못한 것이 아닌가?’에 대한 것이다. 현대사회에 살고 있다고 해서 모두 현대인인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과거란 되돌아오지 않는 것이다.

따라서 과거로 퇴보하는 민족, 퇴보하는 국민이 생존한 예는 없다. 그런데도 과거에 좋았던 것만 보고자 하는 경향이 우리에겐 있다. 그래서 과거에 머물러 있는 민족과 국민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현대라는 세계는 서양의 근대에서 나왔다. 서양의 근대는 과학 문명의 발달과 자본주의, 민주주의 그리고 합리성을 본질로 한다. 이 근대는 인간의 합리적 이성을 바탕으로 하는 시민 사회를 낳았다. 그리고 세계대전 후 유럽의 지성인들은 이성 사회를 대체할 현대적 가치를 구상하고 실천했다. 이 근현대의 가치적 의미가 우리 민족, 우리 국민의 삶으로 수용되기를 바랐다.

그러나 우리 민족은 시민 사회의 합리적 이성이 정착할 기반이 마련되지 못했었다. 일본 군국주의 시대는 합리적 사유를 하면 안 되는 사회였다. 해방 공간에서도 이승만 정권 때도 시민 사회의 합리성의 토대는 정착되지 못했다. 한국전쟁으로 남한은 합리성보다는 복수와 광기가 팽배했고, 북한은 봉건사회에 머물렀다.

결국 20세기에는 합리성을 근간으로 하는 사회 안정화를 이루지 못했다. 독재와 비이성적 이데올로기가 정치 사회를 주도했기 때문이다. 결국 우리 민족은 이성 사회로의 진입 연습은 불가능했다.

일본 군국주의가 합리적일 수 없었듯이 박정희 군부세력에 합리성을 기대할 수는 없었다. 합리성보다는 명령 하복의 군인문화가 시민 사회의 기초가 되었다. 초등학생들도 군대식으로 다뤄졌고 군인문화가 산·학·관 모든 방면에 뿌리를 내렸다.

서양의 근대화 과정이 이성과 학문을 토대로 한 지성의 발달사였다면 우리의 근대화는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경제의 근대화에만 머물렀다.

21C를 맞이하며 우리 국민은 세계 경제위기 속에서 살아남으려는 방법으로 과거 경제 부흥을 일으킨 지도자의 딸을 대통령으로 선출했다. 그러나 그녀와 그녀의 지지자들은 아버지가 이뤄낸 영광을 재현해주기를 간절히 소망하는 국민의 기대를 국민의 믿음을 배신하고 모두 감옥에 갇히는 신세가 되었다. 아버지 방식의 공안 정치도 실패했다.

결국 우리는 빠르게 변화하는 세계 질서 속에 깊숙이 편입되어 있으면서도 합리성을 근간으로 한 서양의 근대인조차도 되지 못한 것이다.

떼법이 판치고, 정치권까지도 가짜뉴스가 난무하다. 막말과 억지 논리가 판을 친다. 그 억지 논리에 국민들은 또 열광한다. 비이성적 국민들에게 최적화된 정치인들의 막말, 억지 논리, 가짜뉴스가 지속해서 재생산된다. 지록위마의 시대이다.

우리는 아직 서양의 근대의 합리적 이성과는 거리가 멀다. 물론 미국사회도 중국도 일본도 이러한 합리성에 도달하지 못한 듯하다. 북조선은 봉건사회니 말할 필요도 없다. 우리가 현대인이 되기 위해 근대의 덕목시험을 통과해야 한다면 우리는 아직 근대를 완성하지 못하고 있다.

우리는 결국 현대인이 아닌 현재인일 뿐이다. 80년대에 느꼈던 좌절을 요즘 정치권과 각 지지자들을 보면서 다시 느낀다. 근대를 완성하고 현대인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빠른 시일 내에 각종 합리적 담론을 구축해야 한다. 그래서 현재인이 아닌 현대인으로 서양 사회의 지성적 풍모를 느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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