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성칠 대전시의원

시대를 앞서가는 사람들은 항상 전복적 사고로 현재를 본다. 기존의 관념에서 벗어나 아방가르드적 생각을 현실에 투영하여 또 다른 형태의 조건들을 제시한다. 특히 예술에서는 더욱 그렇다.

최근 연극에 관심 있는 사람들에게 뜨거운 주목을 받고 있는 연극 ‘슬립노모어’(sleep no more)를 접할 기회가 있었다. 기존의 연극에 대한 생각을 바꾸어 놓은 매우 귀중한 경험을 하게 된 연극이다. 이 연극은 영국의 극단 ‘펀치드렁크’(Punchdrunk)가 실험적으로 시작했다가 미국에서 새롭게 상연해 각광을 받게 된 연극이다. 2011년에 2개월 만 하려다가 관객들의 뜨거운 반향으로 상설공연이 되어 10년째 이어진 공연인데 뉴욕 시민은 물론 외국관광객에게도 꼭 들려야하는 코스로 널리 알려져 있다. 뉴욕 맨하튼 첼시에 있는 물류 창고를 개조해 만든 건물로 매키트리 호텔이라고 간판을 달고 이 연극에 맞게 공연장을 꾸몄다.

6층 건물에 100개의 방에서 다양한 무대를 꾸미고 층마다 동시에 다른 막을 여는 공연이다. 공연장 입구에서 가방을 맡기고 들어가는데 공연무대가 되는 각 층으로 이동하기 전에 하얀 가면을 쓰게 한다. 일체 말을 하거나 배우의 동작에 불편을 주는 행위를 하면 안 되고 그 외 다른 것은 무엇이든 할 수 있다. 이 연극의 특징은 객석에 앉아 배우의 행위를 감상하는 것이 아니고 배우를 따라다니며 공연에 참가하는 것이다. 극중 어떤 배우를 따라갈 것인지는 관객 각자의 몫이다. 무언극이어서 언어가 다른 사람들도 접근하기 수월하다. 세 시간 남짓 진행되는 동안 배우들을 부지런히 따라다니다(사실 뛰어다닌다) 보면 이 연극이 무엇을 이야기하려는지 어렴풋이 느껴진다. 그렇지만 각층에서 벌어지는 모든 것을 다 본 것이 아니어서 정확히 어떤 내용이라는 것은 이야기하기 어렵다. 참여한 사람 모두 다른 경험을 하면서 다르게 느낄 수밖에 없는 구조인 것이다. 셰익스피어의 ‘맥베스’에서 모티브를 얻어 만든 작품이라는 사전 지식이 있어 여기서 벌어지는 서사구조를 꿰어 맞춰보는 데 도움이 됐기는 하나 다 끝나고 보니 그것은 그리 크게 차지하는 부분은 아니었다.

이 연극이 주는 시사점은 기존에 가졌던 연극에 대한 생각, 즉 정해진 공간에 가만히 앉아 배우들이 전달해주는 이야기를 일방적으로 받는 구조나 관객과 배우, 무대와 객석의 경계가 뚜렷했던 것을 모두 파괴하고 새로운 형태의 ‘발상의 전환’을 가져온 연극이라는 것이 가장 주목받는 지점일 것이다. 관객이 공연장에 직접 참여해 뛰어다니면서 마치 게임의 공간 안에 참여한 듯한 경험을 갖게 한다는 점에서 연극에 대한 고정관념을 뛰어넘고 있으며 향후 공연 예술의 변화를 선도적으로 제시하고 있다고 볼 수 있겠다. 디지털 시대에는 쌍방향 소통을 넘어 참여와 체험의 공간으로 변해야 한다는 점을 제대로 읽어낸 것이 많은 호응을 이끌어 낸 것이다.

이 작품을 보면서 부러움을 넘어 이런 작가나 연출가가 나올 수 있는 우리 공연계의 체계나 토양이 얼마나 갖춰져 있는지 새삼 되돌아보게 된다. 또한 젊은 학생들의 아카데미즘이나 신진 작가들의 아방가르드적인 발상들을 포용하고 실험할 수 있는 토대는 만들어져 있는지 재점검이 필요한 시간이다. 미래를 위한 준비에 게으르게 대응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반성하면서 새로운 논의를 시작하자고 제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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