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덕수 공주대학교 교수

화폐는 한 나라의 상징이며 국격(國格)을 나타내주는 바로메타다. 따라서 화폐는 자랑스런 마음으로 깨끗이 사용하는 게 국민 된 도리다. 하지만 우리 화폐에는 몇 가지 문제가 내재되어 있다.

첫째, 등장인물과 성씨 문제다. 한국은 유구한 역사와 많은 성씨를 보유한 나라다. 그러나 화폐의 등장인물은 모두 조선시대 인물이며 성씨도 이씨(李氏)일색이다. 이순신(백원)과 이율곡(오천원권)은 덕수이씨, 이황(천원권)은 진성이씨, 세종대왕(만원권)은 전주이씨다. 오만원권의 신사임당만 평산 신씨다. 그런데 그녀는 이율곡의 모친이다. 왕가(王家)출신이 아닌 모자(母子)가 일국 화폐에 동시 등장한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참고로 한국의 성씨 비율은 김씨가 제일 많고, 다음이 이씨, 박씨 최씨, 정씨 순이다.

둘째, 우리 화폐는 주자학 제일주의, 상무(尙武)정신 결여, 문관우위사상으로 가득 차 있다. 그래서 불교문화의 꽃인 다보탑은 십원, 조선의 명장인 이순신 제독과 거북선은 백원과 오원의 주인공이다. 학(오백원)이나 통일벼(오십원)보다도 못한 대접을 받고 있다. 그런데도 토착왜구나 읊조리고 반일감정만 자극한다. 이는 영혼이 황폐되고 역사인식이 결여된 한국인의 부끄러운 자화상이 아닐 수 없다.

셋째, 이황과 이율곡이 조선 최고의 지성이었음은 분명하다. 그렇지만 조선의 평가는 이황이 이율곡 보다 조금 앞섰다. 문묘종사나 에도막부에 끼친 학문적 영향에서 그랬다. 그런데도 화폐에선 이율곡이 이황보다 5배나 높은 자리를 차지했다.

이는 조선의 주류였던 노론의 정신적 지주가 이율곡이었고 이황은 조선의 아웃사이더였던 남인이었기 때문이라고 판단된다. 노론들은 한때 임금까지도 자신들의 발밑에 두기도 했다.

한편, 일본 화폐는 등장인물의 직업군이나 성씨의 다양성에서 우리보다 앞선다. 더욱이 그들은 일정주기로 화폐의 주인공을 과감하게 교체해 왔다. 최근 아베 정권은 화폐의 등장인물을 2024년에 또 다시 바꾸겠다고 선언했다. 천엔권은 이토 히로부미(정치인), 나츠메 소세키(소설가), 노구치 히데요(세균학자)를 거쳐 기타사토 시바사부로(일본 근대의학의 아버지)로 대체된다. 오천엔권도 니토베 이나조(식민학자), 히구치 이치요(여류 소설가)를 거쳐 쓰다 우메코(여성 교육학자)로 변경된다. 또 만엔권의 후쿠자와 유키치(교육가 및 사상가)도 시부사와 에이이치(경제인)로 변개(變改)될 예정이다.

이제 우리 화폐의 주인공도 조선시대는 물론 근·현대시기까지 확장시켜야 한다. 더욱이 국민들로부터 사랑받고 존경받는 인물들이 새롭게 선정되었으면 한다. 일례로 백성들을 도탄에서 구한 조선의 경세가, 위대한 항일독립투사, 한강의 기적을 일궈낸 기업가, 여류 작가, 항공선각자나 ‘위국헌신군인본분’을 실천하고 산화한 군인, 뜻있는 기부로 세인(世人)들의 심금을 울린 사회사업가, 탁월한 연구업적을 남긴 석학 등이 포함되길 기대한다. 이때 성씨 배분과 여성 배려까지 이루어진다면 금상첨화가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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