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선주 농협 청주교육원 교수

한 대기업 회장과 임원들이 두바이 출장을 가 최고급 호텔에 머물렀다. "베개가 참 좋더구먼. 간만에 푹 잤네." 회장이 던진 한마디에 '의전의 신' A 임원이 분주해졌다. 여행용 캐리어에 베개를 몰래 넣어 와 사장에게 바쳤다. 얼마 뒤 회사로 편지 한 통이 날아왔다. 발신자는 두바이 호텔. 가져간 베개 값을 변상하라는 내용이었다. 당시 현장에 있었던 관계자는"과잉 의전이 빚은 국제적 망신"이라고 했다. 어떤 CEO는 직원 결혼식장에 갔는데 자기가 보낸 화환이 잘 안 보였다고 한다. CEO는 가만히 있는데 같이 간 비서실장이 당장 위치를 바꾸라고 닦달을 해서 오히려 CEO 평판을 떨어뜨리게 하는 의전을 본적이 있다.

한 금융기관의 본부장 비서는 과도한 의전을 하다 보니 직원들이 본부장에게 접근이 어렵고 좋은 의견을 내어도 전달이 되지 않았다. 본부장 이동을 위해 건물내 엘리베이터도 미리 잡아 놓아 직원들은 7층 건물을 걸어서 이동하기도 했다. 존경스러운 본부장이긴 하지만 직원들은 거리감을 느끼게 됐고, 본부장은 결국 직원들과의 소통이 단절됐다.

전문가들은 우리 사회 전반에 뿌리 내린 과잉 의전 문화가 조직에는 물론이고 의전을 받는 당사자들에게도 '독'이 된다고 지적한다. 의전의 사전적인 뜻은'행사를 치르는 일정한 법식'이다. 사회에서는 분명 예의와 격식을 갖춰야 하는 행사가 존재한다. 그러나 한국의 조직문화는 그것이 너무 광범위하고 윗사람 편의에만 맞춘다는 것이 문제다. 회식부터 간담회에 이르기까지 높으신 분들이 참석하는 자리에 의전을 챙기지 않는 경우가 거의 없다. 그나마 높으신 분들은 그러려니 하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까지 직급이 높고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의전에 준하는 서비스를 요구하는 것이 현실이다.

예를 들면 제법 큰 회의의 경우, 의례 회의 자료부터 시작해서 책상배치, 간단한 음료 준비, 명패 등에 이르기까지 손이 가는 일이 많다. 자리도 서열에 따라 맞춰 정해 놓는다.

그러나 GE(General Electric Company)에서는 행사나 회의 진행시 정해진 자리가 없이 자유롭게 앉는데 이러한 부분은 충분히 참고할 가치가 있어 보인다. 지위가 높은 분들이야 과도한 의전 덕에 회의 효율성이 높아질지 몰라도 준비하는 사람들은 정작 집중해야 할 회의 내용이나 진행에 신경 써야 할 에너지를 불필요한 일에 쏟아붓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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