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공섭 대전문화원연합회장

우리는 살아가면서 만남과 이별을 수없이 반복한다. 사랑하는 사람들을 떠나보낼 때나, 정들었던 사람들과의 이별을 할 때는 슬픔과 아픔이 따른다.

인생은 회자정리(會者定離), 거자필반(去者必返), 생자필멸(生者必滅)속에서 사필귀정(事必歸正)으로 돌아가는 자연의 섭리 속에 머무는 것이다. 모든 인연은 순간의 틈 속에서 회자정리가 반복 되는 것에 익숙한 것 같지만, 내가 속한 인연에는 크게 다른 심상 인 것을 부인하지 못한다. 만난 사람은 반드시 헤어지고, 떠난 것은 반드시 돌아오고, 산자는 반드시 죽는다는 사필귀정 속에 존재하는 것이다. 만나면 헤어지는 것은 거스를 수 없는 자연의 이치이기 때문이다. 어찌 보면 참으로 냉정하지만 그러나 현실이며, 자연의 도도함이다. 나와 인연은 필연에서부터 우연까지 귀한 인연인 것은 사실이다.

그 중에서 혈연(血緣)은 가장 귀한 필연이며 나를 존재하게 하는 무한의 큰 인연이다. 혈연으로 맺은 인연 속에 사랑이 충만하고 세상으로 출발시킨 존귀함이 가득하다. 그 소중한 인연이 영원하지 않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우리는 그 소중한 인연의 끈을 언젠가는 놓아야한다. 누구도 예외는 없다. 그래서 우리는 이별 연습을 잘 해야 헤어질 때 덜 아프고 덜 미안하계 이별 할 수 있을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 가족(家族)과 언젠가는 헤어져야 할 시기가 반드시 온다. 그 시간은 우리가 생각하지 못한 순간에 닥치는 이별인 것이다.

만해 한용운은 ‘님의 침묵'에서 “사랑도 사람의 일이라 만날 때 미리 떠날 것을 염려하고 경계하지 아니한 것은 아니지만, 이별은 뜻밖의 일이 되고 놀란 가슴은 새로운 슬픔에 터진다”고 말했다.

회자정리의 유래는 석가모니가 베사리성의 큰 숲에서 열반에 들 때가 왔음을 제자에게 얘기하자 제자인 아란존자가 슬퍼했다. 그때 석가모니가 “인연으로 이루어지는 이 세상의 모든 것들이 빠짐없이 귀착되니 은혜와 애정으로 모인 것일지라도 언젠가는 반드시 이별하기 마련이다. 또한 이 세상 모든 것들이 의례 그런 것이거늘, 아난존자는 어찌 근심하고 슬퍼만 하는가?”라는 데서 비롯됐다.

우리는 은퇴라는 또 다른 위치에 서면 누구나 그동안 많은 사람들과 만나고 헤어졌던 추억을 한 번쯤은 떠올려본다. 그 인연 속에는 순연도 악연도 함께 뒤섞여 느낌표로 깊이를 측정해 본다.

그 인연에는 내 인생의 흐름에 박수로 응원한 인연도 그 흐름을 방해한 인연도 함께 흘러 왔다. 만날 때마다 헤어지는 것을 두려워한다면 삶을 지속할 수가 없을 것이다.

생자필멸 회자정리라 했다. 산 사람은 반듯이 소별되고, 만나는 사람은 언젠가 떠난다는 순리를 깨달아야 참 삶을 살 수 있을 것이다. 이런 까닭에 나와의 인연들에겐 배려와 나눔 그리고 사랑으로 대한다면 이별 또한 크게 아프지 않을 것이며 따뜻한 세상을 함께하는 이치일 것이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사멸이든, 마멸이든 결국 빈 것이 되고 만다. 부모님은 물론 사랑하는 이들과도 헤어져야 한다. 그렇다고 슬퍼하거나 비관할 일만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인간을 비롯한 삼라만상의 모든 것들은 소멸시간이 정해져 있는 것으로서 결국 사라진다는 사실을 우리 모두 잘 알고 있는 까닭이다.

그 헤어짐에 덜 미안하고 덜 속상하고, 덜 아픈 이별은 그 인연에 감사하는 마음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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