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진호 대전본사 편집부장

살다보면 '그냥' 하는 일이 있다. 여기서 '그냥'은 어떤 지시 같은 것에 의한 것이 아니라 스스로의 의지에 따른 것이다. 올 들어 필자에게도 그런 것이 있는데 '한국사능력검정시험'에 대한 도전이다. 어디 써먹을 때도 없을 것 같고 딱히 이유도 없지만, '그냥' 하고 있다.

굳이 이유를 찾자면 필자가 대학에서 역사를 전공했다는 것 정도다. 그 시절 부족했던 공부에 대한 미련(?)이 아닐까 하는 추측이다.

생각해보면 필자는 학창시절 역사를 좋아하긴 했다. 그렇다고 이 도전을 순수한 학문적 활동이라 하기에는 배움과 너무 멀리 살아왔다.

필자가 나온 학교의 사학과는 졸업을 하려면 시험이 아닌 논문을 써야 한다. 필자에게 학사모를 안겨준 논문의 제목은 '반민특위의 활동과 와해'였다. 대한민국 제헌국회가 친일파 숙청을 위해 조직한 '반민족행위특별위원회'는 대다수 국민들의 기대와 역사적 사명감을 안고 출발했지만, 용두사미(龍頭蛇尾)로 끝났다.

반민특위의 실패 원인을 정확히 짚기는 어렵다. 앞서 말했듯 필자의 삶은 배움과 그렇게 가깝지 않았기 때문이다. 참으로 오랜만에 꺼내본 졸업논문에 의지하자면, 그 실패 원인은 미국에 의한 친일파의 친미파 둔갑, 이승만 대통령을 비롯한 정부의 방해공작, 반민특위 자체의 조직적·인적 한계 등이다.

야심차게 출발한 반민특위는 친일파와 그 비호세력에 의해 역할을 다하지 못하고 와해됐다. 반민특위의 실패가 가슴 아픈 것은 그것이 단지 제헌국회의 한계나 당시 국민들의 아쉬움 정도로 끝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제때 뿌리 뽑지 못한 친일파는 그 후 꽤 긴 세월 동안 대한민국 사회를 병들게 했다.

필자는 10년도 넘게 지난 졸업논문 속 반민특위를 보며 현 정부의 적폐청산을 생각한다. 현 정부도 호기롭게 적폐청산을 외쳤지만 현재까지의 결과는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 아직도 법정 안에서 다툼이 계속되고 있고, 가끔은 이해하지 못할 결과가 나오기도 한다. 또 대다수가 공감하는 것 같았던 공수처 역시 그저 말싸움만 계속될 뿐이다.

반민특위의 실패가 친일파 청산을 선언하고 매조지를 하지 못한 제헌국회만의 책임은 아니듯, 우리 시대 적폐청산의 결과도 몇몇의 숙제만은 아니다. 너무 흔한 이야기 같지만 정말 중요한 것은 '국민적 지지'이다. 먹고 살기 힘든 세상이고, 각자의 고민과 숙제가 많겠지만 더 좋은 세상을 위해 기억하고 힘을 실어줘야 하는 '큰 일'들은 분명히 있다고 필자는 믿는다.

얼마 전 TV에서 故 노무현 대통령의 10주기 추도식을 봤다. 또 그보다 앞서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시민문화제를 유튜브에서 찾아봤다. 필자는 그가 꿈꿨던 '사람 사는 세상'을 생각해 본다. 그것에 대한 정의도 의견도 여러 가지겠지만, 필자에게 가장 각인돼 있는 것은 그가 초선의원 시절 한 발언이다.

"제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사회는 더불어 사는 세상, 모두가 먹는 것 입는 것 이런 걱정 좀 안 하고, 더럽고 아니꼬운 꼬라지 좀 안 보고, 그래서 하루하루가 좀 신명나게 이어지는 그런 세상이라고 생각합니다. 만일 이런 세상이 좀 지나친 욕심이라면 적어도 살기가 힘이 들어서 아니면 분하고 서러워서 스스로 목숨을 끊는 그런 일은 좀 없는 세상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그가 아니 대다수가 꿈꾸는 '사람 사는 세상'을 만드는 길이 적폐청산만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그곳으로 향하는 여정 중의 하나만은 분명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것이 적폐청산이라는 말에 갇히지 않았으면 한다. 배움이 짧은 필자는 잘못된 것은 바로잡고 적어도 그것을 되풀이해서는 안 된다고 여길 뿐이다. '그냥' 그렇게 믿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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