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욱 배재대 공공인재학부 교수

세상은 참 묘하다. 수많은 사람들이 각기 자기의 생각과 신념에 따라 살아가는데도 사회가 무너지지 않고 균형을 유지하는 것을 보면 신비한 힘 혹은 보이지 않는 손이 작동하는 것 같다. 제각각의 개성을 가진 많은 사람들이 살아가면서 다양한 갈등과 어려움을 겪지만, 공통적으로 직면하는 어려움 중 하나는 이상과 현실 사이의 간극에서 발생하는 갈등이다.

일반적으로 인간이 다른 동물과 다른 점은 이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으로 배워왔지만, 사실 인간의 독특성은 이성이 아니라 이상을 가지고 살아간다는 것일 것이다. 이상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우리는 현실과의 갈등을 경험하게 된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고등교육법 개정안(소위 '시간강사법')이다. 무려 7년 동안 유예돼 오던 이 법이 금년 8월부터 적용될 예정인데, 벌써부터 대학가가 시끄럽다. 이 법은 시간강사의 처우를 개선하고 안정성을 보장한다는 좋은 의도로 만들어졌다. 이러한 법의 의도와 지향하는 이상에 대한 반대는 거의 없을 것이다. 다만 현실이 문제다. 등록금 동결, 학생 수 감소 등으로 이미 엄청난 재정난에 빠져 있는 대학들 특히 지방사립대학 입장에서는 이 좋은 법을 시행하고 싶어도 제대로 시행할 수 없는 형편이다. 향후 시간강사의 대량 해고가 예상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 때문에 많은 시간강사들이 이 법의 적용을 무조건 반길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비록 정부는 좋은 의도로 이상적인 법안을 만들었지만, 현재 대학이 처한 현실은 녹녹치 못하다. 때문에 대학들은 정부에 지원금을 지속적으로 요청해 왔고, 교육부도 재원 마련을 위해 노력했지만 결과는 필요 예산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다. 현재로서는 우려했던 일이 현실화될 가능성이 높다. 그럴 경우 피해를 보는 것은 시간강사뿐만이 아니다. 강좌 수가 줄고 강좌 규모가 커지면서 대학 교육의 질이 저하될 것은 불 보듯 뻔하다. 결국 피해는 고스란히 세금을 내는 국민에게 돌아간다.

지금도 늦지 않았다. 우리나라의 고등 교육 예산이 다른 OECD 국가에 비해 턱없이 낮다는 것은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정부는 추가 재원을 확보해서 사회적 약자인 시간강사의 대량 해고와 대학 교육의 질 저하를 막아야 한다. 그렇지 못한다면 좋은 의도를 가지고 추진된 정책이 현실의 벽에 부딪혀 오히려 더 안 좋은 결과를 가져온 대표적인 사례로 역사에 기록될 가능성이 높다. 우리는 늘 보다 나은 세상을 꿈꾸며 이상을 추구하면서 살아야 하는 존재이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현실을 무시하면 안 된다. 땅에 발을 딛지 않고 하늘로 날아가려고만 하면 결국 추락할 수밖에 없다. 우리 인간은, 개인 차원이던 혹은 사회 차원이던,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계속 줄다리기를 해야 하는 숙명을 가지고 살아갈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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