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사람들이 단잠에 빠져 있을 새벽 4시 30분.

대전중앙청과 김민지 경매사(28·여)는 이 시간 하루 중 가장 바쁜 때를 보내고 있다.

그는 지역 소비자들의 식탁에 오를 사과와 배 경매를 주관한다.

경매장은 출하주들이 보낸 농산물을 쌓아 놓고 중매인들이 물량을 확보하기 위해 가격으로 경쟁하는 곳이다.

김민지 대전중앙청과 경매사. 사진=정민혜
김민지 대전중앙청과 경매사. 사진=정민혜

그는 경매장 곳곳에 수북이 쌓여 있는 과일 앞에서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으며 경매를 진두지휘한다.

김 경매사는 경매대 위에 올라서면 쉴 새 없이 마치 스님이 염불을 외듯 전자입찰판에 나오는 가격들을 빠른 속도로 흥얼거리면서 경매장의 흥을 돋는다.

전국 각 산지로부터 갓 올라온 신선한 과일을 도매상인들에게 경매에 부쳐 파는 것이 그의 주된 업무다.

김 경매사는 "한마디로 산지와 소비자 중간 역할을 하는 것"이라며 "산지 출하주가 우리 회사에 과일을 위탁하면 우리 같은 경매사가 중도매인들에게 판매한다"고 말했다.

김 경매사는 충청권 첫 여성 경매사다.

그간 경매사라는 직업은 남성의 전유물처럼 여겨졌다.

꼭두새벽 경매에서부터 상대적으로 거친 시장 일을 여성의 몸으로 부딪히기엔 한계가 있어서다.

내면에 꿈틀대는 도전정신이 그를 남자로만 가득한 낯선 세계로 이끌었다.

김 경매사는 생각에 갇히지 않고 여러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다양한 경험과 새로운 시도를 해보기 위해 전 세계 배낭여행을 2년 동안 다녀왔다.

남미 여행 중 변호사, 의사 등을 만나 얘기를 나누면서 '내가 너무 순수하게 살지 않았나'라는 고민이 생겼다.

그들은 본인들의 해당 분야에 전문적인 경험을 갖추고 대화를 나누는 모습을 보고 떠오른 '격하게 살아보자'라는 생각이 그를 경매사 길로 들어서게 했다.

아버지의 조언도 경매사 도전에 한몫을 했다.

대형 도매시장이 위치한 서울 가락동에서 10여 년을 보내신 아버지는 도매시장에서 일해보는 것을 권유했다.

처음 장사를 고민했던 김 경매사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경계선에 서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 폭넓게 접할 수 있는 경매사라는 직업에 흥미를 갖게 됐다.

경매사가 되겠다고 결심한 그는 대전중앙청과에서 남자 경매사를 모집하는 공고를 보고 무작정 원서를 넣었다.

남자 대표가 대부분인 도매시장에서 대표이사가 여자라는 점도 빼놓을 수 없는 요소였다.

그가 입사할 때부터 봐 온 송미나 대전중앙청과 대표이사는 "김 경매사는 중앙청과를 잘 알고 성격도 좋아 출하주들과 도매상인들 사이에 칭찬이 자자하다"면서 "거친 경매 영역이지만 따뜻함과 당참으로 잘 해낼 거라 생각했다"고 말했다.

김 경매사의 도전은 현재 진행형이다.

올해 자체 유튜브 채널을 개설해 유통업계에 새롭게 도전장을 내밀었다.

'후르츠티비'로 개설한 그의 채널은 다른 경매사와

의 컬래버레이션, 참신한 소재의 영상 등 다양한 자체 제작 콘텐츠로 자신의 브랜드 가치를 높이고 소비자들에게 어필하고 있다.

이런 새로운 도전을 통해 김 경매사는 계속 성장하면서 자신의 목표를 향해 나아가고 있다

김 경매사는 "최종 목표는 한국에서 '김민지'하면 농수산물 관련해서 모두가 알만한 유통전문가가 되고 싶다"면서 "한국을 대표할 만한 인물이 되면 외국에도 우리 농산물을 알리는 홍보대사의 역할도 하고 싶다"고 전했다.

이심건 기자 beotkkot@cc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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