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은희 ㈜대원 전무이사(수필가)

재즈 선율과 하나가 돼 흐른다. 재즈 가수 웅산은 '쑥대머리'로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신록의 나무들은 바람에 춤추고, 관객은 가수의 노래에 스스로 댄서가 된다. 만삭의 보름달도 구름 속에서 휘영청 떠올라 몽환적 분위기의 황홀한 밤이다.

자연에서 재즈를 부르고 즐기는 사람들이 그림 같은 풍경을 자아낸 재즈토닉페스티벌이다.

지난해 재즈 음악을 듣고 반하여 다시 오게 된 것이다. 올해는 지난해와 달리 연이틀 가랑비가 오락가락 내린다. 준비한 우비와 우산을 쓰고 삼삼오오 풀밭에 앉아 재즈 선율에 맞춰 흥겹다. 빗물이 돗자리에 가랑가랑 고여 바지와 양말을 적신다. 그러나 비가 내린다고 돌아가는 사람은 거의 없다. 사람들은 하나같이 불편한 내색 없이 빗속의 재즈를 즐기는 모습이다.

모네의 그림 속 '풀밭에서의 점심'이 따로 없다. 청아한 새소리가 지절거리는 오월의 초록 풀밭에 앉은 우리들의 모습은 그림 속 풍경을 옮겨놓은 듯하다. 아니 대통령 별장이었던 청남대 경치는 모네의 그림보다 더 훌륭하다. 귀한 자리에 초대받은 느낌이다. 그래선지 봄비에 초록 물이 든 관객의 표정과 웃음소리가 신록처럼 빛난다. 마치 유년 시절 소풍을 나온 것처럼 지인이 정성스럽게 싸 온 도시락을 나누며 기분 좋은 수다가 이어진다. 이제 산수 좋은 열린 공간에서 음악을 향유하는 문화로 접어든 것이다.

예전 어려운 시절에는 서민은 상상도 못 할 광경이다. 말 그대로 그림 속 풍경이다. 지금은 어디 그런가. 좋은 콘서트나 연주회가 있으면 누구나 찾아가 즐기는 풍조이다. 빗속에서도 정담을 나누며 재즈를 즐기는 풍경이 생활의 현주소고, 사람들의 마음에도 여유가 생긴 것이다.

모처럼 산속 청정한 공기와 재즈의 선율에 몸을 맡기니 마음은 절로 유연해지리라. 서로 못다 한 속 깊은 사연도 자연스럽게 나누는 소중한 시간이다.

어둠이 내릴수록 재즈의 운치도 깊어진다. 모든 대상이 드러나는 낮 분위기와는 아주 다르다. 특별한 선물을 받은 것처럼 몽환적 분위기의 밤이다. 관객들은 가수 웅산의 절규에 가까운 듯한 목소리에 감동하고 있다. 애간장이 끊어질 듯 이어지는 아쟁 연주에 재즈 가수가 판소리를 불러 신선한 충격을 준 것이다. 그녀가 노래한 '쑥대머리'는 춘향이가 옥중에서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며 부르는 노래다. '살아서도 죽어서도 이 분하고 억울함을 알아주는 이가 누가 있으란 말이야'란 언어가 살아 폐부를 찌르는 듯하다. 수많은 관객이 형형한 눈빛으로 가수를 바라보았다.

가수의 앙코르곡도 끝나고 돌아가기 아쉬운 발걸음을 뗀다. 관객이 하나둘 떠나고 풀밭의 하얀 텐트만 남아 교교한 달빛에 초원의 게르처럼 나타난다. 달밤 은빛 윤슬이 반짝이는 대청호를 바라보며 게르에서 여러 날 묵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며 발걸음을 옮긴다. 부디 청남대 재즈토닉페스티벌이 충북의 명물로 남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내년에도 빼어난 경취를 무대로, 남다른 재즈를 고대한다. 오늘이 내일 같던 나른한 일상에 재즈 음률이 환청으로 들리며 생기가 차오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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