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현 상명대학교 글로벌금융경영학과 교수

직역연금이란 특정한 직업을 위한 연금이다. 연금의 역사는 직역연금에서 시작되는데 그 흔적을 고대 그리스의 도시국가에서 찾을 수 있다.

전쟁이 잦았던 도시국가들은 군인들이 기꺼이 전장으로 나가도록 유가족을 책임질 연금을 제공했다. 그리스의 군인연금은 로마시대에 들어와 체계화돼 로마의 세계 정복에 크게 기여하게 된다. 이 제도가 다시 등장하게 된 것은 유럽에서 근대 왕정이 나타나면서부터다. 전제군주들은 강력한 중앙집권을 위해 군인은 물론 많은 수의 공무원이 필요했고, 연금제도는 이들의 충성을 담보할 매력적인 도구였다. 이후 근대화 과정에서 철도, 교육, 우정 분야에 많은 인력이 필요하면서 직역연금도 덩달아 확대된다.

우리나라는 전쟁의 폐허를 딛고 국가안보와 경제개발 그리고 이를 뒷받침할 교육이 시급했고 군인, 공무원, 교직원으로 일할 우수한 인력이 필요했다. 하지만 가난한 정부로서는 이들에게 충분한 급여를 주긴 어려웠고 박봉 대신 은퇴 후 연금을 후하게 쳐서 주겠다고 약속했다. 그래서 1960년 공무원연금법 제정을 필두로 특수직역연금이 등장했고, 오늘날 목적 달성 면에서는 분명히 성공한 제도가 아닐 수 없다.

하지만 도입 후 수십 년이 지나면서 높은 연금액 대비 낮은 기여율, 연금수급자의 증가 등으로 수입보다 지출이 큰 불균형이 심화됐다. 공무원연금의 경우 2001년부터 급여 부족분 전액을 국가 또는 지방자치단체가 안으면서 개혁보다는 재정 부담으로 해결책을 찾았다. 이후 10년 만인 2010년 기여율을 올리는 개혁을 이뤘으나 그 효과는 일시적이었다. 군인연금은 지나치게 높은 급여 수준에 한때 방만한 운용까지 겹쳐 보다 심각하다. 공무원연금과 군인연금만 놓고 보아도 2018년 재정적자를 메울 국고보전금이 4조 3000억 원에 이르렀다. 여기에 현 정부의 대규모 공무원 증원은 재정적자 지뢰를 깔아놓은 것이나 다름이 없다.

이제 재정보전의 명분이 됐던 ‘박봉 속의 헌신’이란 과거의 가치를 버릴 때가 됐다. 자본주의 시장경제에서 공무원의 공공성이 다른 가치보다 우월하다고 보기 어려우며, 일반 국민도 이런저런 경로로 공공성에 기여하고 있다. 또 특수직역연금 가입자의 급여 수준도 더 이상 박봉이 아님을 직시해야 한다. 이점에서 30여 년에 걸쳐 공무원과 일반국민과의 연금격차를 줄이는 노력을 기울여왔고, 결국 2015년 개혁의 성과를 이룬 일본의 사례를 심도 있게 살펴봐야 한다.

필자가 한때 학회장을 지냈던 한국연금학회는 박근혜정부 출범 직후 공무원연금개혁 논란에 휘말린 적이 있다. 당시 극소수 학회원의 생각이 마치 학회 전체의 제안인 것처럼 발표됐는데, 그 덕분에 학회는 공무원노조의 집중포화를 맞았고 지금도 금융기관의 하수인처럼 매도당하고 있다. 필자는 섣부른 정책제안의 위험성, 학회를 이용하려는 불순한 정치적 의도, 일부 정치인의 선동으로 야기된 공공기관회원의 탈퇴 등을 목격했다. 당시의 경험과 교훈에 비춰 본다면 특수직역연금의 개혁 논의는 오히려 노조와 가까운 현 정부에 시작하는 것이 마땅하다. 당장의 표가 아닌 우리 자식들의 미래를 위해 노력하는 정치가 아쉬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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