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곽성희 명예기자
▲ 곽성희 명예기자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이 추구하는 궁극적 목표는 행복'이라고 정의했다. 또 행복을 연구하는 어느 심리학자는 '행복의 기원'이라는 책을 통해 진화론적 관점으로 행복을 표현했다. 이 책에서는 대다수 한국인들은 현재를 즐기지 못하고 살고 있으며, 지금의 고등학생은 대학을 가기 위해, 대학생은 직장을 얻기 위해, 중년은 노후 준비와 자식의 성공을 위해 살아왔고, 노년이 되어서야 비로소 젊었을 때 하지 못했던 것들에 대한 회한으로 아쉬워한다고 했다.

무엇인가 되기 위해 미래를 향해 전력 질주하고 있는 우리의 삶에 대하여 'becoming'(~이 되는 것)을 마음에 두고 살고 있지만 정작 행복이 담겨 있는 곳은 'being'(~으로 사는 것)이라고 했다. 또한 저자는 책의 말미에 '행복은 좋아하는 사람과 음식을 먹는 것'이라고 행복에 대해 정의했다.

진화론적 관점에서 말하는 행복의 그림이 너무 소박하고 단순하게 느껴진다면 그 동안 우리 사회에서 암묵적으로 정의한 행복이 '소유'에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물질적이든 비물질적인 것이든 어떤 것을 소유한다는 것이 영원한 행복을 약속하지 않는다는 걸 알면서도 '소유'가 주는 행복에 우리는 자주 마음을 빼앗겨왔었다. 물론 한 개인이 삶의 목표를 세우고 그것을 이루었을 때 느끼는 성취감 또한 행복의 중요 요인이 된다. 하지만 그렇게 얻은 행복은 시간이 지나면 또 다른 무언가가 되는 것(becoming)을 추구하도록 만든다.

인류의 문명이 눈부시게 발달했지만 우리의 뇌는 과거와 현재가 크게 다르지 않다. 우리의 뇌가 가장 크게 반응하는 두 가지가 바로 음식과 사람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먹을 때, 그리고 사람들과의 관계를 맺을 때 가장 본질적인 쾌감을 느낀다.

종종 인간에 대해 사회적 동물이라고 표현하는 것은 사회적 상황에서 혼자 고립되고 소외될 때 고통스럽고 우울해하고 사람들과 적극적인 관계를 맺을 때는 기쁨과 즐거움을 느끼기 때문이다. 즉 인간은 삶의 영역에서 감정의 경험이 어떠한가에 따라 자신이 행복한지, 불행한지를 평가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볼 때 행복감이라는 심리적 기제는 인류가 물려받은 가장 강력한 생존의 요인이라고 할 수 있다.

행복은 '기쁨의 강도가 아니라 빈도'라고 표현하듯, 일상의 작은 기쁨들이 모여 우리에게 행복을 선물해준다. 사랑하는 가족들 그리고 지인들과 함께 음식을 먹는다는 것 또한 일상의 즐겁고 유쾌한 감정을 경험하는 것이고 매일 매일 행복한 삶을 사는 것(being)이다. 오늘,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자신에게,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에게 행복한 하루를 선물해 주는 건 어떨까 제안해본다.

곽성희 명예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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