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그날’을 보지 못했지만… 그 정신은 시대가 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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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그날’을 보지 못했지만… 그 정신은 시대가 품었습니다
  • 충청투데이
  • 승인 2019년 05월 23일 15시 17분
  • 지면게재일 2019년 05월 24일 금요일
  • 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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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평섭의 충청역사유람] 29 심훈의 고향 당진
‘상록수’ 정신 깃든 당진 한진항… ‘새마을’ 정신 시작점이기도
3·1운동후 투옥된 심훈, 1932년 낙향해 필경사서 집필 시작
소설 ‘상록수’ 사회 전반에 영향… 심훈 선생은 1936년 병사
▲ 당진 심훈기념관 외부에 있는 동상. 심훈기념관 홈페이지 참조
▲ 1935년 ‘상록수’를 영화화 하고자 부곡리 본가에 내려왔을 당시 영화 관계자들과 찍은 기념사진. 심훈기념관 홈페이지 참조
▲ 1935년 ‘상록수’를 영화화 하고자 부곡리 본가에 내려왔을 당시 영화 관계자들과 찍은 기념사진. 심훈기념관 홈페이지 참조

수채화 배경으로 딱 좋은 충남 당진시 서해안에 있는 한진항은 서해고속도로가 개통되면서 더욱 유명해 졌다. 특히 한진항은 바다 낚시를 즐기는 사람들로 붐비며 긴 갯벌에는 바지락을 캐는 사람들이 끊이질 않는다. 무엇보다 명물은 총 연장 7.3㎞, 폭 31.4m의 서해대교로 아산만 넓은 바다 위에 펼쳐진 모습이라 하겠다.

그러나 여기가 오늘날 ‘새마을’ 정신의 출발이 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상록수’ 정신이 배어있는 곳이라는 것도 간과할 수 없다. 1970년대 ‘새마을 운동’이 시작되기 전에는 일제 식민지시대 농촌으로 상징되는 것이 ‘상록수 운동’이었고 그것을 ‘상록수’라는 소설로 불을 지른 분이 심훈 선생이었으며, 그 분이 생전 집필을 하던 필경사와 선생의 묘소 역시 이곳에 있기 때문이다.

심대섭이라는 본명을 갖고 1901년 태어난 심훈은 경기고등보통학교를 졸업했고, 1919년 3·1운동 때는 일본 헌병에 체포돼 서대문형무소에 투옥, 고초를 겪는다. 이듬해 가까스로 감옥에서 나온 심훈은 중국으로 망명, 항저우에 있는 지강대(之江大)에 입학한다. 1923년 다시 고국으로 돌아온 심훈은 소설을 쓰는 일과 그 무렵 일어나기 시작한 영화에도 관심을 갖기 시작한다. 최초의 영화 소설 ‘탈춤’을 동아일보에 연재하는가 하면 ‘먼동이 틀 때’라는 영화를 직접 감독해 제작한 것이다. 이런 과정에 이혼을 하고 재혼을 하는 등 결혼생활은 평탄치 않았으며, 1932년 마침내 고향 당진으로 낙향한다.

한진항의 전원적 풍경과 넓게 펼쳐진 서해 바다는 그에게 어머니 같은 위안을 줬다. 심훈은 직접 설계해 이곳에 집을 짓고 ‘필경사(충남도기념물 제107호)’라고 이름을 붙였으며 여기서 본격적으로 글을 쓰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침내 ‘상록수’라는 소설이 완성됐는데 이것이 1935년 동아일보 창간 15주년 기념 특별 공모전에 당선돼 일제하의 우리 문단에 민족적 메시지를 강하게 전파했다.

▲ 1911년 찍은 심훈 선생님의 가족사진.  심훈기념관 홈페이지 참조
▲ 1911년 찍은 심훈 선생님의 가족사진. 심훈기념관 홈페이지 참조

특히 소설의 제목 ‘상록수’가 상징하듯 젊은이들의 희생적인 농촌개발 운동이야말로 우리가 일제 식민지하에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 지를 제시했다는 평을 받았고, ‘상록수’ 소설 이후 이와 같은 농촌계몽운동 뿐 아니라 사회계몽운동까지도 ‘상록수 정신’이라 명명됐다. 그만큼 이 소설이 준 충격이 대단했다는 뜻이기도 했다.

공무원이 청렴하고 일을 잘 해도 ‘상록수 공무원’이라 해 표창했고, 무의촌에서 의료봉사를 한 의사에게도 ‘상록수’라는 이름을 붙였으며 야간학교 선생님에게는 ‘상록수 선생님’이라 했던 것이다.

물론 심훈상록기념사업회가 매년 이와 같은 상록수 정신을 실천하는 인물들을 선발·시상하는데 2017년의 경우 15년 동안 야간학교를 운영해 400여명의 제자를 양성한 공로로 이상면 전 서울대 법대 교수가 ‘인간 상록수상’을 받았다.

심훈은 왕성하게 농촌개발과 계몽을 위해 소설과 영화를 통해 그의 열정을 쏟았지만 1936년 9월 16일 장티브스에 걸려 투병하던 중 35세 아까운 나이에 숨을 거뒀다.

그러나 일제 식민지 아래 민족적 저항을 농촌개발과 계몽으로 승화시킨 그의 상록수 정신은 농촌분야에서 뿐 아니라 모든 사회분야에서 우리에게 큰 영감을 줬고, 심훈의 이상은 지금도 당진 그의 고향에서 ‘심훈 상록문화제’를 통해 계속 이어지고 있다. 따라서 ‘내 고장을 사랑하자’, ‘배우자’, ‘일하자’, ‘뭉치자’는 그 정신은 더웃 빛을 발해야 할 것이다. <전 세종시 정무부시장·충남역사문화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