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재홍 사진작가, 다큐멘터리 프로젝트 ‘제국의 제국’
위안부·강제징용 등 일제 만행 상징물·인물 등 담아
“피해자 대부분 돌아가셔… 내 기록 후손에 남겨지길”
25일부터 열리는 대한민국페스티벌서 작품 25점 전시

▲ 전재홍 작가 작품 중 올해 촬영된 경남 합천원폭피해자복지회관 위령각에 안치된 1000여 개의 일본 히로시마 피폭자 위패. 세로 240㎝, 가로 600㎝의 대형작품인 ‘리틀보이의 영혼’. 작가 제공
▲ 고흥 소록도의 시체 해부대 앞에 선 현재 고인이 된 한센인 장기진 씨를 담은 작품. 작가 제공
▲ 중국 강소성 남경대학살기념관에 설치된 자신의 등신 브론즈와 같이 선 예취평(倪翠萍 중국인)씨를 담은 모습. 작가 제공
▲ 전재홍 작가
▲ 경기도 광주 '나눔의 집' 지하에 있는 일본군위안소 재현 공간에서 일본군위안부였던 이옥선(왼쪽·생존) 할머니와 문필기 할머니(사망)가 포즈를 취했다. 작가 제공
▲ 히로시마 원폭돔 앞에서 재일조선인 피폭자협회 히로시마 니시지부 회원들을 찍은 작품. 작가 제공

[충청투데이 최윤서 기자] “식민지배기 일제 건축물, 위안부 피해자, 강제징용 노동자를 담아낸 사진 작업은 일제 강점 시절의 아픔이 스며든 ‘공간’과 ‘사람’에 대한 기록으로 후손들에게 남겨질 또 다른 의미의 역사이길 바랍니다.”

사진작가 전재홍 씨는 다큐멘터리 프로젝트 ‘제국의 제국’을 통해 몸소 느낀 식민지 조국의 참상과 피해자들이 폭로한 당시 일제 만행을 회고했다. 그는 과거 대전 지역신문 사진기자로 오랜 기간 활동하기도 했는데 1991년 보도사진 ‘전주교도소 탈주범 대청호 자살사건’으로 인간의 죽음, 그 찰나의 순간을 기록하며 각종 기자상을 휩쓸었던 주인공이기도 하다.

전 씨는 지난 20년간 일본이 개입된 동북아시아의 굵직한 역사적 사건과 관련된 상징물과 인물을 사진으로 기록하며, 그만의 방식으로 함께 분노하며 울었다. 1990년대에 들어서며 본격적인 기록 작업을 시작한 그는 충남 논산을 비롯해 군산 등 전북 호남 평야 지대 일대의 일제 수탈과 관련한 건축물을 촬영했다.

전 씨는 “충남 논산 강경에 일식 2층 건물을 본 적이 있는데 두 달 후에 다시 가보니 없어져 있었다. 이후 동네 사람에게 용도를 물어 그 건물이 ‘동양척식강경주재소’였던 것을 알게 됐다”며 “그 이후로 한국 경제 침탈의 상징적 건축물을 10년간 기록했다”고 계기를 설명했다.

그는 특히 개항 이후 최대 쌀 재배지이자 일제 침탈의 주요 공략지였던 군산, 정읍, 김제 등 전북일대를 돌며, 일본 지주 주택, 일제시대 관공서 등 곳곳에 남아있는 건물의 흔적을 사진으로 남겼다.

전 씨의 작업이 ‘건축물’에서 ‘사람’으로 바뀐 것은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부터다.

그는 “하루는 일제 강점기 건물을 찍으러 가서 만난 분과 인터뷰를 했는데 건물을 담아낼 때와는 또 다른 의미를 발견했다”며 “당시 국내에 유일하게 남아있는 일본 신사가 전남 고흥 소록도에 위치해 있었다. 이곳은 일제시절 나병환자로 불리기도 한센인들을 강제 이주한 곳이기도 하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그때 만난 분이 바로 소록도 병원에 강제 수용됐던 장기진 할아버지다. 병원을 직접 운영했던 일본인들은 당시 신사 참배를 강제로 시켰고 이를 거부하자 온갖 물고문, 구타 등을 일삼았다고 생생히 얘기해 주셨다”며 “할아버지는 병원에서 군납품을 위한 벽돌, 가마니 제조 노동에 강제로 동원됐다가 파상풍, 동상을 걸려 양손과 다리를 절단한 상태”였다고 회상했다.

전 씨는 일제 강점기 한국인이 겪은 고통을 장 할아버지를 통해 조금이나마 체감할 수 있었다며, 역사적 현장에서 전쟁 체험자를 직접 모시고 찍는 작업을 시작한 계기를 설명했다. 이때 시작한 작업이 바로 프로젝트 기록 ‘제국의 제국’이다.

먼저 위안부 피해자 생존자들을 기록했다.

경기도 광주에 위치한 '나눔의 집'은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들이 모여 사는 곳이었는데 전 씨는 그 중 문필기, 이옥선 할머니 두 분을 찍었다. 전 씨는 “이옥선 할머니는 현재도 살아 계신다. 나눔의 집 지하에는 위안소를 재현한 모형 공간이 있었는데 피해자 할머니들은 그곳에 가는 것을 꺼려하셨다”며 “과거 상처가 떠올라 대부분 사진 작업도 거부하셨지만 이 두 분만 유일하게 취지를 설명하자 승낙해 작업을 할 수 있었다”고 전했다.

그는 일본 강제 노동자들도 기록했는데 충북 영동 일본 탄약 창고, 제주도 일본 해군 비행장, 제주도 송악산 어뢰정 기지 등 다양한 장소의 강제징용 생존자를 만났다.

그러면서 인상 깊은 작품을 ‘리틀보이의 영혼’으로 꼽았다. 전 씨는 “경남 합천 히로시마 피폭 피해자들을 위한 복지회관이 있다. 회관 뒤에 1000여개의 위패가 모셔져 있는데 이 모습을 담은 작품의 제목을 원자폭탄 이름인 ‘리틀보이’를 따 ‘리틀보이의 영혼’으로 지었다”며 “사이즈 역시 세로 240㎝, 가로 600㎝의 대형 작품”이라고 설명했다.

그의 작업 열정은 국내·외를 가리지 않았다. 히로시마에 직접 찾아가기도 했다. 당시 피폭으로 조국에 오지 못한 피해자 7명을 만나 원폭 돔 앞에서 촬영했다.

중국 하얼빈에 위치한 일본 371 부대 내 마루타 시설 노동자도 만났다. 당시 일본군은 외부에 이 사실이 노출될 것을 우려해 생체 실험자·노동자 모두 보일러실에서 불태워 죽였다. 전 씨는 노동자 중 운 좋게 살아남은 생존자와 하얼빈 731부대 보일러실 벽체가 남아있는 곳에서 사진 촬영을 했다.

40만명의 사망자로 추정되는 중국 남경대학살과 관련한 기록도 진행했다. 중국 남경대학살기념관을 방문해 생존자 한족인 강근복 할아버지와 중국인 예취평 할머니를 앵글에 담아냈다.

그는 “예취평 할머니의 경우 일본군 의해 어렸을 때 총을 맞아 어깨가 함몰돼 있고, 총검으로 머리를 찔려 10cm 정도의 자상이 있었다”며 “어깨 함몰은 조각상에도 표현이 돼 있다”고 상황을 전했다. 이어 “프로젝트에 있어 아쉬운 부분이 있다면 군함도(일본 나가사키현) 생존자를 찍지 못한 것”이라며 “대전 용운동에 지하 탄광 노동에 동원됐던 할아버지가 거주하고 계셨는데 몸이 상당히 불편하셨다”며 “아들이 부축해 군함도 현장에 같이 가길 부탁 했지만 여건이 좋지 않아 결국 추진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전 씨는 오는 25일부터 서울에서 개최되는 ‘대한민국페스티벌’에 초대돼 그의 ‘제국의 제국’ 프로젝트 주요 작품 25점을 전시한다.

그는 “작업을 통해 만났던 피해자 분들 대부분 현재 돌아가셨으며 살아계신 분들은 극소수”라며 “그간의 작업이 일본군 위안부, 히로시마 원폭, 강제 노동, 강제 이주, 731 마루타 부대, 남경대학살 등 일제가 개입된 굵직한 역사적 사건에 대한 기록이자 또 다른 역사가 되길 바란다”고 전했다.

최윤서 기자 cys@cctoday.co.kr

저작권자 © 충청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