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재훈 ETRI 프로세서연구그룹 연구원

역사적으로 혁신적인 발명품들은 인류에게 큰 선물을 안겨줬다. 페니실린은 항균을 통한 수명 연장을, 백열전구는 밤을 환하게 밝혀줌으로써 활동 시간을 비약적으로 증가시켜줬다.

특히 ICT는 엄청난 계산 능력과 광범위한 연결성을 무기로 우리의 생활 방식을 근본부터 바꾸고 있다. 가령 인터넷을 매개로 이전과는 비교도 불가능한 양의 정보를 획득할 수 있게 됐으며, 심지어 스마트폰은 이러한 정보들을 한 손에 들고 다닐 수 있게 만들었다. 또 인공지능 기술을 기반으로 한 자율주행 기술은 머지않아 운전면허증이 필요 없어질 시대를 조금씩 앞당기는 중이다.

이러한 기술들을 가능하게 해준 기저에는 바로 컴퓨터 내부에 프로세서 혹은 CPU(Central Processing Unit)라 불리는, 초 당 수 억 개의 명령어들을 처리해주는 반도체 칩이 존재한다.

일반적으로 어플리케이션은 일련의 규칙을 바탕으로 정의된 명령어들이 개발자의 의도에 따라 특정 순서로 조합된 묶음으로 볼 수 있다. 이 조합 방법에 따라 수 없이 많은 종류의 어플리케이션이 탄생한다. 프로세서의 동작은 단순히 보면, 메모리에 저장된 명령어들을 가져와서 명령의 내용을 확인한 후, 목적하는 연산을 수행해 그 결과 값을 메모리에 다시 저장하는 것이다.

현재 데스크톱이나 스마트폰 등에서 사용되고 있는 범용 프로세서들은 실행될 어플리케이션의 명령어 조합을 예측할 수 없기 때문에, 어떠한 임의의 명령어 조합에 대해서라도 최대한 빠르게 처리할 수 있는 방향으로 연구개발 돼 왔다. 즉 비정형화된 알고리즘을 처리하는 데 특화돼왔으며, 이러한 방향은 이용자들의 성능 요구에 비교적 잘 부응해오고 있었다.

하지만 최근 CNN(Convolutional Neural Network), RNN(Recurrent Neural Network) 등 뉴럴 네트워크를 필두로 한 인공지능 기술들이 등장하며 이러한 흐름이 깨지기 시작했다. 기존 어플리케이션들과는 달리, 뉴럴 네트워크는 거대한 데이터들을 극단적으로 정형화된 알고리즘으로 처리하는 어플리케이션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CNN의 내부 알고리즘을 들여다보면 수 조 개의 단순 더하기와 곱셈 연산으로 구성된다. 기존의 프로세서로는 이미지 한 장을 처리하는 데 초 단위의 시간이 소요된다. 하지만 실생활에 적용되기 위해서는 1초에 30장이 넘는 이미지를 처리할 수 있는 성능이 요구된다. 성능 측면만 고려해보면 GPU(Graphics Processing Unit)를 사용할 수 있으나 가격 및 전력효율 측면에서 비효율적이다.

필자가 속한 프로세서연구그룹은 가격 및 전력효율을 모두 아우른 성능 요구에 부응하기 위해 위와 같은 알고리즘의 내재적 특징들에 착안해 뉴럴 네트워크 처리에 특화된 인공지능프로세서 연구개발을 진행하고 있다. 인공지능이 지금까지의 발명품들과 구분되는 특징은 스스로의 판단이 가능하다는 점이다. 이는 인간의 신체적 제한으로 해결에 한계가 있었던 문제들을 손쉽게 파헤칠 수 있게 됐다는 것을 의미한다. 시공간에 대한 제약이 없다는 장점은 산업적 측면뿐만 아니라 시각장애인 안내나 독거노인 돌봄 등 사회적 측면에서도 많은 변화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

그리고 이 모든 변화가 인공지능 프로세서로부터 시작된다. 향후 제4차 산업혁명을 이끌어 갈 우리의 인공지능 프로세서는 인간의 지능뿐만 아니라 이웃을 배려하는 따뜻한 마음까지 투영된 모습이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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