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재영 충남도립대학교 총장

결혼은 많은 사람들이 행복할 것이라는 기대와 환상으로 시작하는 일이지만, 실제로는 매우 불편하고 힘든 경험을 겪는 과정이다. 교제는 당사자들의 관계를 유지하는 것임에 비해, 결혼은 당사자들이 맺고 있는 사회(가족·친지 등)간의 관계를 유지하는 일이다. 최근에 비혼(非婚)이 ‘결혼하지 않을’ 권리로 인식되고 있고, 결혼 의사가 있다고 하더라도 결혼을 미루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다. 결혼생활은 행복해야 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많고, 결혼에 따르는 의무가 과도하게 크며 특히 여성에게 주어지는 부담이 매우 크다.

결혼은 사실 다소 불편한 단계를 거쳐서 이뤄지며, 결혼 생활도 마찬가지이다. 아이를 낳게 되면 또한 매우 불편한 일을 감당해야 한다. 출산은 견디기 어려운 고통이다. 아이가 부모에게 주는 행복이 크다고는 하지만 그 행복을 누릴 여유를 주지 않으며, 아이의 성장은 부모의 에너지를 고갈시킨다. 아이가 커서 고등학생이 되고 대학생이 되어 이제야 조금 한가로운 시간이 주어지나보다 하면, 취업이나 결혼은 또 한 번 부모의 여유로운 생활을 빼앗아 간다. 당사자 간에도 만만치 않은 갈등이 잠복해있어서, 계기만 되면 드러나서 두 사람을 괴롭힌다. 단란하고 행복한 시간도 많이 있지만 서로 아무 연정도 없는 것처럼 살아가는 사람들조차 있다. 심지어 졸혼(卒婚)이라는 기묘한 결혼형태도 출현하였다.

사람을 포함한 영장류는 생물학적으로 매우 흡사하다. 그런데 사람과 기타 영장류가 가장 크게 다른 점은 죽은 자에 대한 무덤을 만드는 것이라고 한다. 제사도 마찬가지다. 이처럼 인간은 죽은 자와도 관계를 맺으며 대화하는 유일한 존재다. 죽은 자와의 대화도 가능한 유일한 존재인 인간이 살아있는 배우자 그리고 아이들과 대화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일본의 철학자 우치타 타츠루는 그의 저서 ‘거리의 현대사상’에서 이렇게 말한다. '결혼은 쾌락을 보장하지 않는다. 오히려 결혼이 약속하는 것은 끝없는 불쾌함이다. 하지만 결혼은 불쾌함을 극복해 낸 인간에게 쾌락이 아니라 어떤 성취를 약속한다. 그 성취는 재생산이 아니라 불쾌한 이웃, 다시 말해 타자(他者)와 공생하는 능력이다. 그리고 그것이야말로 근원적인 의미에서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조건일 것이다.'

불편한 이웃(배우자, 자식, 친척, 친구, 회사동료 등)과 공생하는 능력을 가진다는 것은 정말로 놀라운 일이다. 불쾌한 타자와 공생하는 능력을 갖추어가는 과정에서 인간이 인간의 모습을 갖춰 간다. 인간은 이루어냄으로부터 기쁨과 보람을 느끼는 존재이어서, 타자와의 공생을 통해 인간다움을 발견해 그것을 드러냄은 시대를 계승해야 한다는 의무보다 더 중요하고 보람 있는 일이 될 것이다. 불편하고 불쾌한 일이 자갈길 위의 자갈처럼 여기저기 깔려있지만, 마치 ‘산티아고로 가는 길’을 걷듯이 불편한 수고를 겪으면서 자신과 끝없이 대화하여 마침내 자신을 발견함과 같이, 고통스럽지만 아름답고 위대한 순례를 마친 자로부터 드러나는 광채에 절하게 되는 감동적인 경험을, 결혼이라는 현실적인 과정을 통해 얻게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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