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관계에서는 영원한 우방도 영원한 적도 없다고 한다. 세계사를 훑어보면 나라간 친소, 우호적대 관계는 실로 무상하게 국력과 실리에 따라 변화무쌍하게 바뀌어 왔음이 이를 증명한다. 결국 자강불식, 끊임없이 힘을 키우는 것만이 치열한 국가경쟁 구도에서 살아남는 방안임을 실감한다. 이런 현실에서 소모적인 정쟁과 각 당의 이해타산과 명분 쌓기에 골몰하는 이즈음 우리 정치풍토는 힘을 모으기는커녕 그나마 쌓아놓은 국력을 탕진하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다.

나라의 힘을 쌓아가는 동시에 이로운 우방 여러 나라를 우리 편으로 만드는 노력 또한 절실하다. 이런 과정에서 '문화의 힘'은 절대적이다. 한때 가수 싸이가 끌어올렸던 우리 대중문화의 영향력을 이제는 BTS가 외연을 더 넓혀 가는 중이고 전 방위에 걸쳐 우리 문화예술의 힘은 국력 신장에 핵심요소가 되기 때문이다.

러시아 제2의 도시이자 예술의 본거지인 상트 페테르부르크의 상트페테르부르크대학 구내에 조성된 소설가 고 박경리 선생의 동상<사진>은 소리 없이 확산되는 우리 문화 예술의 힘을 상징하는 징표처럼 여겨진다. 작고한지 오래지 않은 우리 현대작가의 동상이 외국에 건립된 사실은 의미가 깊다. K-pop을 비롯한 한류 문화 보급을 통한 국가 이미지 향상과 관심 확대도 중요하지만 문학 음악 미술 같은 순수예술의 해외 전파는 반짝하는 일회성에 그치지 않고, 취향이 변덕스러운 대중보다는 일정한 지적 수준을 배경으로 해당 국가 지식인 계층을 상대하는 까닭에 더욱 공을 들여야 한다.

러시아 중심부에 세워진 박경리 선생 동상을 보며 수준 높고 지속적인 문화 예술 해외 전파와 교류를 가속화 할 여러 방안을 생각해보게 된다. 러시아에서는 우리 문화예술에 대한 관심이 높아 가는데 우리나라 대학에서는 근래 러시아어학과가 대거 폐과되는 현실이 그래서 우려스럽다. 노벨문학상을 바라면서도 다양한 외국어 인력 양성에는 관심이 없는 이율배반도 그렇지 않은가.

<한남대 프랑스어문학전공 명예교수·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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