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평섭의 충청역사유람] 28 錦山, 왜군을 몸으로 막다(2)
권율, 이치대첩 승리로 왜군 전라도行 막아… ‘임진왜란史 가장 값진 전투’
조헌·영규대사 등 의병들도 왜군 재공격에 결사항쟁… 전사자 수습만 3일

▲ 왜군의 전라도 진입을 막은 ‘이치대첩’은 임진왜란 사에 가장 값진 전투로 기록돼 있다. 사진은 금산혈전순절도. 문화재청 제공

충남 금산군과 전라북도 완주군 사이의 대둔산 이치고개에서 벌어진 치열했던 전투는 권율 장군이 이끄는 관군과 의병의 승리로 끝났다. 왜군은 막대한 사상자를 냈고 권율 장군은 불과 11명의 전사자를 냈으니 그럴 만도 하다. 그러나 무엇보다 왜군의 전라도 진입을 막아 냈다는 데서 이 전투는 임진왜란 사에 가장 값진 '이치대첩'으로 역사는 기록하고 있다.

이 승전보는 당시 17세의 정충신에 의해 평안도 의주로 피난 갔던 선조임금에게 급히 전달되었고 선조임금은 크게 기뻐해 권율 장군을 나주 목사로 임명했다. 그리고 권율이 현지에 부임하기 전 전라도 도절제사로 크게 승진시켜 발령했다.

금산성으로 후퇴한 왜군은 전열을 가다듬고 무기를 손질하며 다시 전라도 진격을 준비하고 있었다. 이처럼 금산성에 집결해 다시 전라도 진입을 시도하고 있는 왜군에게 이번에는 의병들이 공격해 왔다. 옥천에서 의병을 일으켜 청주성을 되찾기까지 했던 조헌 선생과 스님의 몸으로 의병을 일으킨 영규대사. 조헌은 1000명 미만의 의병을, 영규대사는 600명의 승병을 이끌고 진산에 집결해 1592년 8월 17일을 공격개시일로 정하고 권율 장군에게도 그렇게 약속했다.

이렇게 합동작전을 계획한 것은 앞서 호남 의병의 상징이었던 고경명 선생이 7000명의 병력을 이끌고 금산성을 공격했으나 실패한 교훈에 의한 것이었다. 그때 왜군의 선제공격으로 고경명 의병장이 전사했고 아들도 함께 싸우다 목숨을 잃었다.

그러나 조헌도 고경명처럼 적의 기습공격에 조총을 맞고 숨을 거뒀다. 당초 계획했던 8월 17일 이곳에 집결키로 했던 권율의 군사가 도착하지 않자 조헌은 단독으로 8월 18일 새벽 금산성 공격에 나섰던 것. 승병을 이끌고 있는 영규대사는 물론 참모들이 공격의 시기를 늦출 것을 건의했으나 조헌은 오직 충(忠)과 의(義) 앞에 죽음도 두렵지 않다며 공격을 진두지휘했다.

▲ 금산 태고사. 금산군 제공
▲ 금산 태고사. 금산군 제공

그런데 이미 왜군은 의병의 배후를 차단하는 기습작전을 전개, 의병들은 완전 포위된 상태에서 싸울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다 화살마저 떨어져 의병들은 육박전을 벌이며 결사적으로 공격했다. 이 와중에 참모들은 조헌에게 몸을 피할 것을 간곡히 권했으나 그는 오히려 앞장서 나가다 조총을 맞고 쓰러졌다. 영규대사도 동시에 숨을 거뒀다. 안타까운 것은 고경명 선생이 아들과 함께 전사했듯이 조헌 선생도 아들과 함께 이곳에서 전사한 것이다.

왜군의 초기 금산 진입 때 금산군수 권종이 아들과 함께 전사한 것을 생각하면 금산은 임진왜란의 '성지'(聖地)라 할 수 있다. 물론 의병들 또한 거의 전원 장렬히 목숨을 바쳤다. 그들 전사자들 시신을 정리하는데 3일이 걸릴 정도였다니 얼마나 처절한 전투였는가? 그때 수습한 의병들의 시신을 한 곳에 모아 묘를 쓰니 이것이 '칠백의총'이다

금산전투는 이렇게 왜군의 승리로 끝났다. 그러나 그들 피해도 워낙 커서 다시 호남지방으로 진입하려던 계획을 포기하고 9월 16일 금산에서 완전 철수하여 옥천으로 이동했다. 그러니까 우리 의병들은 싸움에 졌지만 왜군을 퇴각시킴으로써 호남을 지켜내는 승리를 거둔 셈이다. 그리고 멀리 평양까지도 진격했던 고니시의 전력을 급속히 떨어뜨리는 성과도 올렸다.

그때 나라를 위해 목숨을 던진 700명의 영웅들의 넋이 지금 금산 '칠백의총'과 종용사에 모셔져 있다. 조헌, 고경명, 영규대사, 변응정 등과 함께….

<전 세종시 정무부시장·충남역사문화원장>

PS: 이 글을 쓰면서 아쉬운 것은 장호 금산문화원장의 말처럼 이런 영웅들의 거사 일시, 전사 장소 등이 기록마다 조금씩 다르다는 것이다. 금산군청과 학계가 하루 속히 정리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 왜군의 전라도 진입을 막은 ‘이치대첩’은 임진왜란 사에 가장 값진 전투로 기록돼 있다. 사진은 이치대첩지 전경. 금산군 제공
▲ 왜군의 전라도 진입을 막은 ‘이치대첩’은 임진왜란 사에 가장 값진 전투로 기록돼 있다. 사진은 이치대첩지 전경. 금산군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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