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용래 대전 유성구청장

빛바랜 사진 한 장을 볼 때마다 유성온천의 명성을 어떻게 하면 되찾을 수 있을까 고민에 빠진다.

1970년대 허니문여행지였던 유성호텔 앞에서 찍은 달달한 신혼부부 사진이다.

일본의 온천도시인 게로시(下呂市)를 견학하고 지난 10~12일 3일간 성황리에 끝난 유성온천문화축제 현장을 동분서주하면서 많은 깨우침을 얻었다. 스웨덴의 비영리단체이자 독특한 시각으로 소득·생활형편을 분석하는 ‘갭마인더’ 프로젝트 ‘달러 스트리트(dollar street)’에 들어가면 전세계 56개국 300여 가정의 실생활을 인터넷으로 관찰할 수 있다. 가족, 침실, 거실, 부엌, 화장실, 음식 등의 사진 3만여 장이 저장돼 있고 소득, 직업, 취사연료, 희망사항 등에 대한 설명도 첨부됐다. 갭마인더는 각 나라를 선진국과 개발도상국(후진국)으로 양분하지 않는다. 1인당 하루 소득에 따라 1단계(1달러), 2단계(4달러), 3단계(16달러), 4단계(32달러)로 세분한다.

1단계에 사는 가족은 상수도와 전기 혜택을 보지 못하고 흙으로 쌓은 비좁은 방에서 대가족이 함께 산다. 가장 큰 희망은 수입을 2달러로 올려 더 나은 집으로 이사하는 것이다. 2단계 가족은 부분적으로 상수도와 전기 혜택을 받는다. 더 넓은 집과 농토, 안정적인 일자리를 잡는 것이 희망이다. 3단계는 기본생활을 충족하면서 저축도 하지만 더 큰 집이나 이동수단을 갖고 싶어 한다. 우리나라가 속한 4단계 가족은 사업체를 넓히고 고급차에 관심을 보이며 해외여행을 희망한다. 오늘날 전 세계인의 75%가 2~3단계에 살고 있다고 한다. 흥미로운 점은 각 단계별 소득이 비슷하면 세계 어디서나 생활방식과 희망사항이 유사하다는 점이다.

우리나라는 최근 경제위기에도 불구하고 국민소득 3만 달러를 돌파했다. 신혼부부가 유성호텔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었을 1970년 당시 1인당 국민소득은 300달러를 넘지 못했다. 근 50년 만에 100배 이상 뛰었다. 유성온천이 신혼여행지로 각광받은 1970년대를 갭마인더의 분류법에 대입하면 2단계와 3단계 중간쯤으로 보인다. 나라 경제를 살찌우고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소처럼 일하던 국민들이 큰 맘 먹고 하룻밤 쉬었던 고급휴양지였다. 당시 인프라를 감안할 때 유성온천이라도 없었다면 참으로 삭막한 시절을 보냈을 거다.

이후 경제부흥기를 거쳐 가정에 샤워시설이 보급되고 가족단위로 주전부리할 수 있는 상상초월의 찜질방이 퍼져나갔다. 더 나아가 세계적인 휴양지로 홀연히 날아가고 부모를 모시고 일본 료칸(旅館)을 투어하기도 한다. 우리나라 온천도 일본 못지않은데 료칸 관광이 인기인 이유는 노천탕, 다다미방, 현지음식, 인근 관광지 투어 등을 한번에 누릴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세계를 누비는 4단계 시대 사람들에게 ‘만병통치 온천’ 하나만 앞세워 “놀러오세유”라고 외친들 공허한 메아리일 뿐이다.

올해 유성온천문화축제 기간에 방문객들은 야외족욕장, 허브·녹차·국화·인삼탕 등 테마탕에만 관심을 가진 게 아니다. 물총대첩·거리노래방 등 흥겨운 놀이체험을 즐기면서 대학 주변과 유성천 인근의 트렌디한 음식점, 유성만의 먹거리, 이팝나무길 산책 등에 호기심을 보였다. 핵심은 이것이다. 온천도시 유성을 4단계 사람들이 관심을 가질만한 수준으로 끌어올려야 한다.

추진 중인 온천지구·관광특구 활성화사업과 봉명동 명물카페거리 조성, (가칭)유성 샹젤리제 거리 사업 등이 완료되면 유성도 3단계를 건널 수 있을 듯하다. 4단계로 진입하기 위해 인근 지자체와의 협업, 계룡산·성북동 자연휴양림과의 연계를 강화하고 구민들과 묘안을 짜기 위해 머리를 맞대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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