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일진 변호사

'말 한마디로 천냥 빚을 갚는다'라는 속담이 있다.

말 한마디가 천냥에 비견되는 가치를 지닐 수 있다는 언변의 중요성을 강조할 때 흔히 인용되는 속담이다.

말 한마디와 천냥이 대조되어 표현된 데서 알 수 있듯이 위 속담은 말 자체는 대가성 없이 가볍고 쉽게 표현될 수 있는 어떤 면에서는 하찮은 것임을 전제로 한다.

또한 말은 급부를 얻거나 면제받는 등 표현의 목적을 위하여 편의적으로 사용될 수 있고 더 나아가 필요한 경우 허위와 기망을 불사할 수 있다는 점이 위 속담의 근저에 내포되어 있다고 본다.

이 점에 대하여는 이상하게도 별다른 근거 없이 위 생각에 미치는 것이므로 필자의 주관적인 생각에 불과한 것인지 다른 사람도 이와 같이 생각하는지는 모르겠다.

말 자체는 쉽게 표현될 수 있다 하더라도 외부에 표현된 이상 그 결과는 크고 중대할 수 있다는 것이 위 속담의 뜻 중 하나라고 생각된다.

아무튼 시정의 보통인은 말 한마디로 천냥 빚을 갚기는 커녕 말 한마디 실수로 빚을 지기 십상이라는 생각이 든다.

우리는 굳이 위 속담이나 남아일언중천금 등의 말을 거론하지 않더라도 말에는 책임이 따르기 때문에 말은 신중하게 하여야 된다고 교육받아 왔고 자녀 등에게 그리 교육도 시키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언제부터 인지 정확하지 않지만 근자에 이르러 말의 중요성과 책임성이 망각되었는지 말이 여과 없이 선정적으로 표현되는 현상을 발견하게 된다.

말이 여과 없이 표현될 수 있는 이유나 배경은 말의 중요성을 표현하는 본인 스스로가 인식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겠지만 대부분 경험을 통해 정치권이나 고위 공직자들의 말 또한 그 표현방법에 있어서 자신과 크게 다르지 않을 뿐더러 더욱이 표현된 말에 대하여 별다른 책임이 부과되지도 않는다는 사실을 학습하였기 때문으로 생각된다.

어느 순간 우리 사회는 표현이 선명하고 노골적일수록 용기가 있다거나 솔직 담백하여 뒤 끝이 없다는 긍정적 의미가 부여되거나 표현방법이 거칠고 투박할수록 통이 크고 선이 굵은 사람으로 평가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이와 같이 사람을 칭찬하고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것이야 크게 나무랄 일까지는 아니겠지만 반대의 경우라면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즉 듣는 사람이나 표현의 대상이 된 사람에 대한 정중하고 완곡한 표현이 오히려 오해를 불러 일으키거나 자기변명으로 나아갈 수 있는 비겁한 언동쯤으로 치부되는 경우가 그것이다.

이는 분명 왜곡된 병리적 현상으로 보인다.

위와 같은 왜곡된 풍조가 만연된 탓인지 표현방법과 수위를 정함에 있어 염치나 예의는 접어둔 채 오로지 상대방의 급소를 찾아 회복하기 어려운 상처를 내는 것이 마치 대단한 재주라도 되는 양 자화자찬하는 것에 이제는 위아래가 다르지 않은 것 같다.

말 한마디로 빚을 갚기는 어려워도 말 한마디 잘못으로 빚을 질 수 있고 그 빚은 결국 자신이 갚아야만 될 빚이라는 점을 자각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된다.

말을 하기에 앞서 듣는 사람이나 표현의 대상이 된 자에 대한 이해와 배려가 선행되어 진다면 좀 더 정제되고 완화된 표현방법이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이고 위와 같은 노력들은 집적되므로써 분열과 갈등을 빚고 있는 이 사회의 통합을 이루는데 작은 초석이나마 될 수 있다는 생각이다.

위와 같은 노력을 경주함에 위 아래가 있을 수 없겠지만 위 쪽에서 보다 큰 노력이 있어야 한다. 물은 위 쪽에서 아래 쪽으로 흐르는 것이 순리이지 않은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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