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명의 뒤편… 속세여 잠시 뒤로!
또한 장곡사 금동약사여래복장축원문이 있는데 이는 태정(太定) 3년(고려 충숙왕 13년)에 간행된 금강경에 들어 있어서 불상의 연대를 알게 한다.
장곡사에는 다른 절에서는 볼 수 없는 두개의 대웅전이 있다. 한국 건축사상 중요한 두 개의 사찰이 한 곳에 놓여있는 역사적인 가람이다. 경사지에 자리잡아 작은 마당을 중심으로 누각과 승방, 그리고 법당으로 이루어진 하대웅전이 있는가 하면, 법당과 응진전이 나란히 서 있는 상대웅전이 있다. 아래위 두 법당에는 각각 대웅전이라는 현판이 달려 있어서 한 절에 두개의 대웅전이 있는 기이한 모습이다.
보물 제181호인 하대웅전 구역은 운학루(雲鶴樓)를 들어서야 펼쳐진다. 대웅전과 설선당(說禪堂)과 봉황각이 있다. 하대웅전 내에는 보물 제337호로 지정된 금동여래좌상이 봉안되어 있다.
이 불상 속에서는 복장유물이 발견되었는데 고려 후기(1346년)에 조성된 불상임이 입증되었다. 이 약사여래는 목에 삼도가 있고 머리는 나발이며 손에 약단지를 든 고려 불상의 특징을 보여주고 있다.
약사여래를 모신 불전을 약사전이라고 하는데 대웅전이라 부르는 것은? 옛날에 석가불을 주불로 모시고 약사여래와 아미타불을 좌우에 모셨던 삼존불 체계의 불전에서 석가불과 아미타불이 없어지고 약사불만 남은 것으로 추정된다.
하대웅전에서 50m쯤 올라가면 상대웅전이 있다. 보물 제162호로 지정된 이 건물은 기둥과 보는 고려 건물양식이고 연목과 공포 등 작은 부재는 조선중기 양식이다. 고려 건물을 조선중기에 수리하면서 변형시킨 것으로 보인다. 중수기에 의하면 불전 내에는 석불 2구, 금불 3구가 안치되었고 동쪽벽에는 오도자(吳道子)의 불벽화가 있었다고 한다. 현재는 철불 2구와 소조불 1구가 있으며 석불 2구는 없다.
상대웅전은 비로자나불을 주불로 하는 화엄신앙의 불전으로 비로전이거나 대적광전이나 대광명전으로 불러야 옳다. 그런데 대웅전으로 부르는 것은 좀 이상하다. 이것은 후대에 변경된 것으로 보여진다.
이곳에 있는 철불은 높이가 61㎝, 높은 석조좌대(165㎝) 위에 앉아 있다. 비로자나불인데 오른쪽 어깨가 벗겨진 법의(法衣)를 입고 있다. 상체는 짧고 무표정한 얼굴이다.
장곡사는 국보 제300호인 미륵불괘불탱화를 비롯해 국보 2점과 보물 4점, 유형문화재 1점 등 보기드물게 많은 문화재를 보유하고 있으며 약사여래 기도도량으로 유명하다. 절 입구에 들어서서 주변을 살피다 보면 절방 문틀 위에 '장곡사'란 현판이 보인다. 자세히 들여다 보면 김종필(金鐘泌)씨가 박정희 정권 시절, 국무총리를 할 때 무슨 연유로 이 절에 와서 썼는지 알 수 없지만 눈에 설지 않게 쓴 글씨를 만나게 된다.
세상의 번거로운 일로 감당하기 어려울 때 이 절을 찾으면 새로운 세계가 열릴 것만 같다. 한때 젊은가수가 부른 '칠갑산'으로 이곳이 유명해졌지만 칠갑산에는 백제의 왕도였던 부여의 북방을 지키던 자비성(慈悲城), 일면 도솔성의 성터가 남아있다.
칠갑산 장곡사는 산과 산으로 연속된 깊은 산중에 천상의 설법장과 지상의 설법장을 만들어 놓고 내세의 행복을 꿈꾸던 조상의 지혜가 돋보이는 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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