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압속 민족의식' 늘 푸르리…

▲ ⒞ copyright 2002 대전매일
당진군 송악면 부곡리에 위치한 필경사는 심 훈 문학의 산실이다.

심 훈(1901∼1936)은 1932년 서울 생활을 청산하고 그의 아버지가 살고 있는 이곳으로 내려와 한동안 아버지와 한집에 살면서 '영원의 미소', '직녀성' 등을 집필했다.

1934년에 독립해 살 집을 직접 설계해 지은 것이 필경사이다.


필경사란 옥호는 1930년 '그날이 오면'이란 제목으로 시집을 내려다 일제의 검열에 걸려 못냈는데 그 시집 원고 중에 있는 필경이란 시의 제목에서 딴 것이라고 그의 '필경사 잡기'란 글에서 밝히고 있다.

한가지 일화를 소개하면 집지을 터를 잡기 위해 이곳 저곳을 돌아 다니던 중 아끼던 상아 파이프를 잃어 버렸다.
그것을 찾기 위해 그 때까지 돌아다닌 곳을 다시 되짚어 다니다가 빠뜨렸던 상아 파이프를 찾은 곳이 지금의 필경사 자리였다고 한다.
파이프를 찾아 담배를 태워 물고 앉아 살펴 보니 사람이 깃들 만한 자리더라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 필경사가 여기에 지어진 것이다.
이곳에서 1935년에 농촌 계몽소설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는 '상록수'가 씌어졌다.

필경사는 한때 교회로 사용되기도 했는데 그의 장조카인 고(故) 심재영 옹이 되사서 관리하다가 당진군에 희사했다.

심 훈은 이곳에 살면서 '상록수'를 집필했던 행동적이고 저항적인 지식인이다.

그의 작품에서는 도도한 민족주의와 계급적 저항의식, 휴머니즘이 기본정신으로 흐르고 있으며, 특히 농촌계몽문학에서 리얼리즘에 입각한 농민문학의 장을 여는 데 크게 이바지한 작가이다.

소설가이며, 시인, 영화인으로 본명은 대섭(大燮), 본관은 청송(靑松), 호는 해풍(海風)이고 아명(兒名)으로 삼준 또는 삼보가 있고 아버지 상정(相廷)의 3남 1녀중 3남으로 서울 노량진에서 출생했다.

1915년 경성제일고등 보통학교에 입학했고, 1917년 왕족인 이해영과 결혼한 뒤 1920년 중국으로 망명해 이듬해(1921년) 항저우(抗州), 치장(之江)대학에 입학했다.

1923년 귀국해 연극·영화·소설 집필 등에 몰두했으며, 처음에는 특히 영화에 많은 관심을 보였다.

1924년 이해영과 이혼하고, 그해 동아일보사에 입사했다가 1925년 조일제 번안의 장한몽(長恨夢)이 영화화될 때 이수일역으로 출연했고, 1926년 최초의 영화소설 '탈춤'을 동아일보에 연재하기도 했다.

다음해에는 일본으로 건너가 본격적인 영화수업을 받은 뒤 귀국해 영화 '먼동이 틀 때'를 원작집필·각색·감독으로 제작했으며, 이를 단성사에서 개봉해 큰 성과를 거뒀다.
식민지 현실을 다뤘던 이 영화는 '어둠에서 어둠으로'라는 제목이 말썽을 빚자 개작한 작품이며, 영화 제작은 이것이 마지막이었다.

그 후 1928년 조선일보에 입사했고, 1930년 안정옥과 재혼했다.
1931년 경성방송국으로 전직했으나 사상문제로 곧 퇴직했다.
1932년 충남 당진군 송악면 부곡리에 내려와 집필에 전념했고, 소설 '상록수'는 동아일보 창간15주년 기념 현상모집에 당선된 작품으로 1935년 동지에 연재됐다.
'상록수'는 농촌계몽운동을 다룬 소설로 널리 알려져 있고, 작가의 문명을 일세에 떨치게 한 작품이다.

소설의 줄거리는 청석골의 채영신과 한곡리의 박동혁이 어느 신문사 주최 계몽운동에 가담했던 인연으로 사랑하는 사이가 된다.

두 사람은 학교를 졸업하고 박동혁은 한곡리로, 채영신은 청석골로 내려가 농촌운동에 헌신한다.

온갖 시련과 고난으로 심신이 극도로 쇠약해진 영신은 어느날 박동혁이 있는 한곡리에 가서 며칠간 휴식을 취한다.영신과 동혁은 서로 자리가 잡힐 때까지 3년만 기다렸다가 결혼하자고 다짐한다.

영신은 교회건물을 빌려 야학을 하는데 주재소에서는 80명의 정원제를 강요한다.

영신은 새 학원을 짓기 위한 모금운동을 한다.지친 영신은 학원 낙성식날 맹장염으로 졸도, 수술을 받고 동혁이 달려와 간호를 한다.

그러나 동혁이 다시 한곡리로 돌아와 보니 고리대금업을 하는 강기천이 동혁의 농우회원들을 매수해 그의 운동을 방해하고 있었다.
화가 난 동혁의 아우 동화가 회관에 방화하고 도망치자 동혁이 대신 잡혀가게 되는데 그가 다시 풀려 나와 청석골에 가보니 병이 나 있던 영신은 동혁을 애타게 부르다가 이미 숨을 거둔 뒤였다.

동혁은 자기가 죽는 날까지 영신이 못다한 일까지 해낼 것을 다짐하며 슬픔 속에 새로운 각오를 안고 한곡리로 돌아간다는 줄거리이다.

'상록수'는 감성적인 것을 주조로 한 대중성을 지닌 계몽소설이다.전편을 통해 흐르는 민족주의 사상과 주인공의 희생적 사랑이 감동을 자아낸 작품이다.

러시아의 '브 나로드 운동'에 영향을 받아 1935년 동아일보가 전개한 농촌계몽을 주제로 한 장편소설 공모에 당선된 작품이다.이광수의 '흙'과 함께 농촌 계몽형 소설의 대표작이다.

농촌계몽에 투신하는 젊은 남녀 박동혁과 채영신의 헌신적 노력과 역경 극복, 그리고 고귀한 사랑을 내용으로 하고 있다.

1936년 단편 '황공의 최후'를 신동아에 발표해 상록수의 영화화를 계획해 각색했으나 일제의 방해로 실패했다.

이 밖에도 '동방의 여인', '불사조' 등 다수의 작품이 있으며, 1936년 손기정 선수가 독일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 경기에서 우승했다는 신문호외에 감격해 그 뒷면에 '오오 조선의 남아여!'란 즉흥시를 썼던 것이 마지막 글이었다.

지난 76년 7월 당진군 당진읍 읍내리 남산공원에 그의 기념시비 '상록탑'이 건립됐으며, 애국시 '그날이 오면' 전문이 음각돼 있고 매년 가을 당진군에서는 상록문화제가 거행되고 있다.

심훈 선생의 기념시비에 음각된 '그날이 오면'의 그 날이란 심훈이 갈망했던 민족 해방의 날이다.

작품의 전체 내용은 그 날이 왔을 때 폭발하듯 터져 나올 환희의 모습에 집약된다.

어떤 사람들은 이 작품이 한 편의 시로서 지나치게 격렬한 감정에 지배돼 알맞은 시적 균형을 잃었다는 사실을 지적한다.하지만 극단적인 경험이 압도하는 순간에는 보통의 시적·수사적 질서가 무너질 수 있다.

그럴 때에는 차라리 억누를 수 없는 힘의 솟구침에 말을 맡기는 것이 정상적인 것이다.심훈은 민족의 억압된 아픔과 절실한 민족 해방의 욕구 때문에 이런 작품을 썼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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