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공직생활, 도민 성원 덕분

퇴임을 앞둔 이원종 충북지사는 어느 때보다 여유있는 표정이었다. 무난한 3선(三選)이 예상됐지만 지난 1월 정계은퇴라는 용단을 내린 직후 주말이면 운전연습, 컴퓨터 워드(word) 연습 등을 통해 홀로서기를 준비하느라 여념이 없다고 한다.

항상 늦출 수 있는 긴장된 생활을 훌훌 털어버리고 이젠 자연인(自然人)으로 돌아갈 채비를 끝낸 이 지사를 지난 26일 그의 집무실에서 만났다.

-퇴임이 얼마 남지 않았다. 현재 심경은 어떤가.

"8년이라는 시간이 정말 꿈길처럼 지나갔다. 취임할 때마다 앞에 둔 임기 4년을 생각하면 그렇게도 길게만 느껴졌는데…. 아무튼 공무원 생활을 행복하게 했다고 생각한다. 이 모든 것은 150만 충북도민들의 아낌없는 성원 덕분이다.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 또한 열심히 해 준 공직자들께도 감사의 말을 전하고 싶다. 아쉬운 점이 있다면 그 동안 많은 분들께 좀 더 잘 해 드리지 못한 것이다. 총 9년간(관선 1년·민선 8년) 충북도정을 이끌면서 미운 정(情), 고운 정 들었던 사람들과 멀어진다는 사실이 못내 아쉽다."

-정계은퇴 결정에 대해 후회해 본 적은 없나.

▲ /사진=한상현 기자
"또 다시 시간을 돌린다고 해도 똑같은 결정을 했을 것이다. '(3선 불출마 및 은퇴) 결정을 참 잘했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당시 명예롭게 마무리 지을 수 있는 조건이 충분했었다. 하지만 혁신도시 분산배치를 매듭짓지 못한 것은 못내 가슴에 남는다. 또한 하이닉스·매그나칩 하청지회 사태를 임기 내에 해결하지 못한 것도 큰 아쉬움으로 남는다. 혁신도시는 당초 충북에는 해당사항이 없었지만 충주·제천·단양 등 낙후된 북부권을 위해 투쟁한 성과물이었다. 그 곳(북부권)으로 가는 것이 옳았지만, 공공기관들과 협의하는 과정에서 진천·음성으로 최종 결정됐다. 비록 북부권 유치는 성사되지 않았지만, 법무연수원 등 3개 연수기관 분산배치(제천 개별이전)는 향후에라도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 정부에서도 외연상으로는 (분산배치를) 반대하는 듯 하지만, 사실상 분산배치의 필요성을 인정하고 있다."

- 퇴임 후에는 어떻게 지낼 생각인가.

"지사직에 있으면서 못해 본 일이 한 두가지가 아니다. 직접 운전하면서 여행도 가고, 가족들과 함께 노래방도 가고 싶다(웃음). 무엇보다도 퇴임 후에는 행정학 관련 책을 쓰고 싶다. 오랜 기간 동안 느꼈던 행정실무를 바탕으로 책을 쓰고 싶지만, 생각만큼 잘 될지는 모르겠다. 혹자는 대학 총장이나 입각에 대해 얘기하고 있지만, 그런 일은 없을 것이다. 철저히(?) 자연인으로 생활하고 싶다."

- 정우택 충북지사 당선자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씀은.

"정 당선자와는 출신 대학은 물론, 행정고시도 후배라는 공통점이 있다. 실제로 아끼는 후배다. 정 당선자는 젊다는 강점과 함께 국회의원을 지내는 등 정치력까지 겸비한 훌륭한 인물이다. 향후 도정이 젊고 역동적으로 발전할 것으로 기대된다. BT·IT를 근간으로 한 첨단산업을 바탕으로 '경제특별도(道)' 건설을 이룩해 150만 도민 모두가 행복하게 살 수 있도록 힘써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 도민들께 당부하고 싶은 말은.

"여러가지 부족한 점이 많지만, 성원해 주신 도민들께 거듭 감사를 드린다. 도정에 신뢰를 보내주신 덕에 하위권에 머물러 있던 충북이 선두그룹으로 변신했다. 바이오(BIO)에 대한 청사진을 제시했을 때는 많은 분들이 합당치 않게 생각했지만, 결국 바이오산업을 향도하는 데 성공했다. 이 모든 것은 위대한 도민들 덕분이다. 21세기 충북의 미래비전 전략을 수립하고, '인터넷 가장 잘 쓰는 도(道)'라는 명성은 얻게 된 것은 좋은 본보기다. 아무쪼록 그동안 보내주신 도민들의 관심과 사랑에 다시 한번 감사의 말씀드린다"

■ 30일 퇴임하는 '영원한 충북맨'

"선진도정 틀 닦고서 41년 공직마감 용단"

"비록 몸은 떠나지만 저는 영원한 충북 사람입니다."

민선 2·3기 '충북호(忠北號)'를 이끌었던 이원종(64) 충북지사가 41년간의 공직생활을 뒤로 한 채 오는 30일 퇴임식을 갖는다.

이 지사는 5·31 지방선거를 앞두고, 충북도민의 지지도가 정점을 달했지만, '진정 물러날 때를 알아야 한다'는 평소 지론을 지키기 위해 지난 1월 4일 '정계은퇴'를 전격 선언, 신선한 충격을 불러왔다.

충북 제천에서 가난한 농부의 넷째 아들로 태어난 그는 우체국장이 되겠다는 꿈을 안고, 지난 63년 국립체신대학을 나와 광화문 우체국 공중전화 동전 수거원으로 공직에 첫발을 내디뎠다. 하지만 당초 생각과는 판이하게 다른 생활에 적잖은 후회를 하게 됐다.

'청년 이원종'은 곧바로 향학열을 불태우며 성균관대에 입학했고, 뼈를 깎는 노력끝에 지난 1966년 제4회 행정고시에 합격하면서 행정가로 변신하는 데 성공했다.

이후 서울 용산·성동·강동·성북·동대문구청장을 비롯해 서울시 내무국장, 대통령 비서실, 26대 관선 충북지사, 서울시장, 제30·31대 민선 충북지사 등을 거치면서 '행정 전문가'의 경지를 향해 성큼 다가섰다.

하지만 서울시장 재임 당시, 성수대교 붕괴라는 뜻하지 않은 아픔을 겪으면서 공복을 벗은 뒤 3년간 성균관대 교수, 서원대 총장 등을 역임하며 잠시 학계로 눈을 돌리게 됐다. 이후 고향 충북으로 내려와 지난 98년 민선 2기 지사직에 도전, 당시 72%라는 압도적인 지지를 받으며 당선됐다. 또한 지난 2002년 선거 역시, 지역민들로부터 57%의 지지를 받으며 재선에 성공했다.

특히 이번 5·31 지방선거 역시, 그에게 견줄만한 대항마가 없었지만 후배들에게 길을 터주기 위해 스스로 '용퇴'를 결심하게 됐다.

그는 퇴임 후 서울 사는 큰딸 부부에게 빌려줬던 23년 된 낡은 아파트를 고쳐 살 계획이다. 지역의 원로(元老)로서 충북에 남아있을 법도 한 데, 정우택 차기 지사에게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해 그림자까지 거둬가겠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지난 12년간의 투쟁끝에 얻어낸 호남고속철 오송분기역 유치, '2002 오송 국제바이오엑스포'의 성공 개최, 행정중심복합도시 건설, 오창과학산업단지 준공, 인터넷 가장 잘 쓰는 도(道), 문장대 용화온천 개발 저지, 제2국가대표 선수촌 및 국가기상위성센터 유치, 청남대 개방, 증평군 출범 등. 이 지사의 말처럼 충북은 그의 재임기간 중 '도정 100년사(史)에 최대 호기'를 마련했다.

특히 지난해 대전·충남과의 지루한 줄다리기 끝에 쟁취한 호남고속철 오송분기역 유치와 충북을 생명공학(BT)의 메카로 이끌 오송생명과학산업단지 조성은 그의 공직생활 중 가장 큰 보람으로 기억되고 있다.

'胡馬依北風 越鳥巢南枝(호마의북풍 월조소남지)'

이 지사는 '북쪽 오랑캐 말은 북풍으로 몸을 기대고, 월나라 새들은 남쪽 가지에 둥지를 튼다'는 어느 무명(無名) 시인의 싯귀를 인용하면서 "비록 몸은 떠나지만 늘 고향 충북을 바라보면서 살겠다"는 말을 끝으로 고향에 대한 끊임없는 사랑을 대신했다.?

이 지사 약력?? △64세 △제천고·국립체신대·성균관대 졸업 △4회 행정고시 합격 △한양대 행정대학원 졸업 △서울시 기획담당관, 용산·성동·강동·성북·동대문구청장 △서울시 주택국장·보건사회국장·교통국장·내무국장 △대통령 비서실 내무행정비서관 △26대 관선 충북지사 △서울시장 △성균관대 교수 △서원대 총장 △30~31대 민선 충북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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