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정욱 배재대학교 교수

제10차 아시아태평양 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가 지난 27일 막을 내렸다. 이 회의가 태평양 건너 멀리 멕시코 로스 카보스에서 열리고 있는 동안 국내에서는 북한의 핵문제로 어수선했다. 그리고 이 회의 폐막과 함께 북한 핵개발에 관한 정상 성명을 채택했다.

그 내용을 보면, 북한이 적극적으로 아·태지역 공동체의 일원으로 참여해 경제적 혜택을 받으라는 당근과 함께, 그런 혜택을 누리기 위해서는 핵무기 없는 한반도가 전제돼야 하며, 한반도 비핵화에 대한 지지를 확인하고 북한 핵개발 프로그램의 폐기를 촉구하는 채찍을 가하고 있다.

같은 시기 북한의 고위급 경제시찰단이 대한민국을 방문해 이곳 저곳을 시찰하고 갔다. 삼성전자, 생명공학연구소 등 우리가 자랑하는 반도체 공장과 연구소를 그들은 거침없이 휘젓고 다녔고, 필요한 모든 것을 요구했다. 며칠 전에는 계획에도 없던 동대문시장 방문을 비롯해 여러 가지 파행적이고 돌발적인 행동으로 우리측 관계자들을 당혹하게 했다는 보도도 있었다.

APEC이 개최되기 전 미국의 캐리 특사 보고를 받은 미국의 부시 대통령은 한반도의 평화와 안전을 위해서 대화를 통해 북한의 핵문제를 해결하겠다고 했다. 9·11테러 이후 악의 축으로 북한을 지목할 때와는 사뭇 다른 행동과 말에 우리는 많은 의아심을 품었고, 지금도 그 의심은 사라지지 않고 있다.

여전히 풀리지 않고 남아 있지만, 현대상선을 통한 4000억원 북한 지원설과 그 지원금으로 무엇을 했느냐 하는 의문이 제기 될 때, 김대중 대통령은 북한 지원설에 대해서 부인했고, 핵문제에 대해서도 핵은 결코 용납될 수 없다고 한가롭게 이야기했다. 이런 것들을 모아 유추해 보면 APEC에 참석에 정상들의 대북 성명과 한·미 정상의 입장이 다른 것이 하나도 없다. 우리 나라 언론에서 제공한 이와 같은 모든 보도는 마치 APEC이 우리의 문제를 위해 존재하는 것처럼 보인다.

북한 경제시찰단과 APEC회의, 이것은 정말 별개의 것일까? 북한을 악의 축으로 분류해 숨 한번 잘 못 쉬어도 전쟁을 불사하겠다는 미국의 그 엄포와 배짱은 어디로 갔는가? '핵은 절대 용납할 수 없다' 하면서 북한의 경제 시찰단을 받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리고 그들의 파행적이고 도도한 행동에 대해서 아무런 제재도 가하지 못하는 이유는 또 무엇인가? 북한의 핵문제와 경협은 별개의 문제이기 때문에, 민간 차원에서의 경제협력은 계속 이어져야 된다는 대통령의 그 말 한 마디가 그렇게도 중요하다는 말인가?

북한 핵문제, 북한 경제시찰단, 경제협력 문제, APEC 정상 대북 성명 등에는 풀리지 않는 것이 있다. 군대에서 가장 흔하게 사용하는 용어가 있다. "…해도 국방부 시계는 돌아간다"는 표현이 있다. 이제 얼마 남지 않는 것, 저자세로 국민들에게 용서하고 사과하는 것보다 그냥 지나다 보면 해결되겠지 하는 정부의 입장, 사병들과 다른 것이 하나도 없다.

평화적인 해결 방법과 대화를 통한 해결 방법, 모두가 좋은 방법이다.
그러나 북한에 대한 유감의 표시나 불쾌감을 나타내는 공식적인 표현 한 마디 하지 못하는 정부가 안타까울 뿐이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역사가는 현재를 서술하는 것이 아니라, 후일 지난날을 비판한다는 사실을 우리 모두는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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