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은경 국민연금관리공단 대전지방통합지원센터장

사무실 근처에 주상복합빌딩 공사가 한창이다. 공사장 주변도로를 대형 크레인이 수시로 막고 있어서 그 장애물을 잘 피해가는 일이 아침 출근길 기분을 좌우하기도 한다. 그러나 도로 이용자를 위한 예고나 양해의 표지판은 본 일이 없다.
퇴근해서 아파트 앞에 도착하면 너저분하게 붙어 있는 이런저런 광고전단을 한 움큼씩 뜯어내는 게 일과가 됐다.

크레인에 막혀 버린 도로를 우회하느라고 시간과 기름 소모가 더 늘어나는 일이나 광고지 쓰레기량이 늘어나도 시민들은 그런 것들이 `나의 몫' 이라는데 익숙해져 있다. 도심지의 차선과 신호체계는 수시로 달라져서 순발력 있게 적응하지 못하면 적당히 습관적으로 살아가는 우리를 무척 당황하게 한다.

바로 눈앞에 있는 건물이 몇 층짜리인지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무질서하게 간판으로 도배를 한 상가나 수년째 공사가 중단된 채 그물망이 흉물스럽게 너풀거리는 오피스텔 건물을 마주치면 '쾌적한 초록환경 도시를 조성하고, 시민들의 삶의 질 향상과 아름다운 도시환경 유지에 역점을 두며…' 라는 이 도시의 비전이 오버랩되면서 공허감마저 느낀다.

과거의 흔적을 남기지 않으려는 듯 불도저로 말끔히 밀어 버리고 우뚝우뚝 사각의 콘크리트 건물들이 순식간에 들어서고 있는 이 도시의 어디에서 우리꿈을 찾을 수 있을까? 가시적 성과를 자랑하는 행정주체의 업적에 편승해 우리도 도시적 편리함에 익숙해져 가지만 "이곳에 야산이 있었는데… 밤나무도 많았었지" 하는 향수는 잊을 수가 없다.

이 도시에 살고 있는 우리의 바람은 매우 소박하다. 개개인의 삶의 가치관이 다르고, 욕구도 다양한데 이 모두가 채워지리라고 기대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출퇴근길이 편안하고, 길을 걷다가 잠시 쉴 수 있는 나무 그늘과 조그마한 벤치가 있으면 좋겠고, 마음놓고 자전거를 타는 아이의 밝은 웃음소리를 듣고 싶다. 서로 교감하고 자부심을 느낄 수 있는 활기찬 도시의 모습에서 생동하는 우리의 희망을 그릴 수 있으면 행복할 것이다.

이 도시의 발전과 미래사회를 책임져야 하는 주인으로서 스스로 지키고 가꿔 나가려는 실천강령을 덕목으로 생각하고, 주인답게 품위 있고 성실한 의식을 갖춰야 한다는 사실도 물론 잘 알고 있다.
그러나 근원적인 이해의 구조가 없는 우리에게 부담 지우고, 우리에게 탓을 돌리는 현상 때문에? 점점 자신감을 잃어 갈 수도 있다.

늦은 저녁, 차량도 뜸한 외곽의 굽은 길 모퉁이를 어둠 속에 지키고 서 있는 경찰을 가끔 볼 때가 있다. 신호를 무시하고 진행하는 차량 단속을 한다지만 그 모습은 낚싯대를 드리우고 월척을 기다리는 낚시꾼이 연상돼 영 마음이 편치가 않았다. 그 시간에 이 도시의 치안을 챙겨야 될 경찰이 왜 거기에 있어야 하는지 서글픈 생각마저 든다.?

이 도시의 주인인 시민이 좀 더 자신감을 갖고 소외감을 느끼지 않도록 행정주체는 좀더 세심해야 되고 `더 나은 도시의 꿈은 언제나 주민의 머릿속에서 나온다' 라는 평범한 진리를 경청할 필요가 있다.

연일 쌓여 가는 시민의 소리가 메아리 없는 외침이 되지 않아야 하고, 전시적이고 막연한 계획보다는 충실한 내용과 실체를 만들어 나가면서 공감을 얻을 수 있어야 한다. 브라질 변방에 있는 꿈의 생태도시 '꾸리찌바' 는 시민을 위해 실천하고 시민을 존경하는 원칙아래 많은 것을 얻을 수 있었다고 한다. 그 꾸리찌바를 보고 감탄만 할 것이 아니라 우리도 미래도시의 상을 만들어 보자. 우리가 진정한 삶의 풍요를 느낄 수 있는 것은 경제적 조건이나 물질적 조건보다 자신이 존중받고 있다는 만족감과 일체감이 아닐까 싶다.
브라질 변방의 꿈의 생태도시 `꾸리찌바'를 보고 감탄만 할 것이 아니라 우리도 미래의 도시상을 만들어 보자.?

이 도시에서 우리가 진정한 삶의 풍요를 느낄 수 있는 것은 경제적 조건이나 물질적 조건보다 자신이 존중받고 있다는 만족감과 자신감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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