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인문 정치행정부장

지구촌 최대의 축제인 월드컵이 개막돼 전 세계 65억인의 시선을 한 곳으로 모으고 있다. '별들의 전쟁'에 가려 5·31 지방선거의 후폭풍도 수면아래 잠시 내려앉아 있는 듯하다.

하지만, 민선 4기를 열어갈 새로운 당선자들이 각 시·군의 업무를 보고받는 자리에서 전임 단체장의 '실정(失政)'이 속속들이 밝혀지고 있어 지방자치의 암울한 현주소를 가늠케하고 있다.

충북도내에서는 단체장의 즉흥 행정으로 주민들의 세금이 녹아난 사례가 한 두가지가 아니다.

하지만 예산낭비 사례가 명백히 드러나도, 이를 책임지는 단체장이 없다는 것이 기가막힐 따름이다.

청원군은 전임 군수의 제안에 따라 5000만 원의 예산을 들여 황포돛배를 건조(建造)했으나, 한달 가까이 강(江) 한 가운데 방치돼 있어 대표적인 예산 낭비 사례로 지적받고 있다.

괴산군은 5억 6122만 원을 들여 세계 최대규모의 가마솥을 만들었으나, 마땅한 용처(用處)를 찾지 못해 옥수수와 감자를 삶는 데 활용하고 있다. 괴산군은 또 군수의 지시로 하천 가장자리에 3000만 원을 들여 축구장을 만들었다가 주민의 세금 3000만 원을 물속에 떠내려 보냈다. 단 한 차례 축구대회를 가진 것이 고작이어서 너무나 값비싼 대가를 치르고, 공 놀이를 한 셈이다.

문제는 이러한 해괴한 행정이 단체장의 독단에 의해 빚어지고 있는 데도, 누구하나 제동을 걸지 못한다는 데 있다.

더구나 그렇게 날려보낸 돈이 단체장 개인의 주머니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주민들이 납부한 세금이라는 데 더 큰 문제가 있다. 사업의 타당성은 외면한 채, 주먹구구식 즉흥행정을 펴다보니, 주민들도 모르게 헛되이 낭비되는 돈이 한 두푼이 아니다.

국정감사, 감사원 감사, 행정자치부 감사, 자체 감사는 물론, 지방의회까지 다각적인 감시채널이 있다고 하지만, 단체장의 독단으로 낭비되는 예산이 좀처럼 줄어들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으니 한심할 따름이다.

주민의 소중한 세금을 '조자룡 헌 창 쓰듯' 그렇게 헤프게 써도 된단 말인가.

지난 1995년 주민의 손으로 직접 단체장을 뽑는 민선시대가 시작된 이후, 전국적으로 수많은 단체장이 전횡과 비리를 일삼다 '영어(囹圄)의 몸'으로 전락한 경우도 한 둘이 아니다.

'엽관제(獵官制)'를 엄격히 규제하는 데도, 단체장의 눈치에 따라 줄을 서다보니, 우리는 책임행정보다 선심행정이 늘 앞자리를 차지했던 것을 수없이 지켜봐야 했다.

그나마 내년 7월부터 '불량 정치인, 함량 미달 단체장, 엉터리 지방의원'을 우리 손으로 바꿀 수 있게 된 것은 천만다행이다. 지난달 국회를 통과한 '주민소환제'를 통해 임기 중 각종 비리에 연루되거나 전횡을 일삼는 단체장을 해임시킬 수 있는 통제장치가 마련됐기 때문이다.

비록 주민소환 청구비율이 지나치게 높고, 서명요건에 주민등록번호 등을 기재토록하는 등 법안자체를 발동하기까지 난관도 적지 않다. 하지만, '내 손으로 뽑은 공무원을 내 손으로 감시하자'는 법안이 만들어진 것은 행정의 투명성과 효율성을 높이고 책임감을 부여한다는 점에서 크게 환영할 만한 일이다.

충북도내 12개 시·군 가운데 절반 가량이 지방세로 소속 공무원의 월급조차 해결하지 못하는 현실을 감안할 때, 어찌보면 '주민소환제' 도입은 오히려 늦은 감이 있다.

5·31 지방선거 당선자들에게 주문한다.

월드컵에서 비신사적인 행위를 하거나 스포츠맨 정신에 어긋나는 행위를 한 선수선수에게는 '경고(Yellowcard)' 또는 '퇴장(Redcard)'이 주어지듯, '추레(Dirty)'한 일탈 행정을 일삼는 위정자들에는 주민의 심판이 내려질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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