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에 요즘 두 가지 문화적 경사가 겹치고 있다. 지금까지 국립박물관이 하나도 없던 강원도에 국립춘천박물관이 오늘 개관하게 됐으며, 지난 25일 전국에서 울릉도 다음으로 인구와 예산이 적다는 미니 지방자치단체인 양구군에 박수근 미술관이 개관한 것이 바로 그것이다. 춘천박물관의 개관으로 전국의 모든 도 단위 지자체가 자기 고장의 향토적 특성을 살린 국립박물관을 갖게 됐다는 데 의미가 있다. 그러나 이를 지켜보는 우리의 심정은 몹시 부럽고도 부끄럽다.

대전은 전국 대도시 가운데 국립박물관이 없는 지지리도 못난 고장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서울, 부산, 대구, 광주와 같은 광역시는 고사하고 청주, 전주, 제주, 진주, 김해에도 국립박물관이 있지 않은가. 인천에는 국립박물관이 없는 대신 시립박물관이 있다. 대전과 시세가 비슷한 광주에는 국립박물관에다 시립박물관까지 갖추고 있는데도 국토의 중핵도시로 발돋움하고 있는 대전은 국립박물관이 없는 유일한 대도시가 되고 있다.

지난 90년대 초부터 국립박물관 유치에 나섰던 대전시가 최근 자연사박물관 쪽으로 급선회한 것은 문화재청이 공주와 부여에 국립박물관이 있어 유보적 태도를 취하고 있기 때문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지만 설득력이 별로 없다. 경주에도 공주나 부여와 마찬가지로 국립박물관이 있지만 국립대구박물관을 세워 대구·경북지역의 문화유산을 전시, 보존하고 있지 않은가. 전시할 유물의 빈곤을 들어 반대하는 논자도 없지 않은 듯싶지만 국립김해박물관이 가야시대 유물 1300여점으로 전문화하고 있는 것을 감안한다면 그것이 장애요인이 될 수도 없을 것이다.

대전은 원래 선사유적의 보고다. 그동안 대전에서 발굴된 선사유물은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돼 있는 16점을 비롯 500여점에 가깝고, 대전시 향토사료관에 소장되고 있는 유물만 해도 1004점이나 된다. 전남 나주시가 '삼한 박물관'으로 성격을 규정하고 국립박물관 유치에 나섰던 경험에 비춰 대전도 선사유물을 중심으로 대전과 충남의 특색 있는 문화유산을 간직하는 국립박물관의 존재는 절대적이다. 여기에다 학계의 주장처럼 동아시아 민속박물관. 인류문화사 박물관과 같은 주제로 우리 역사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친 주변국의 유물을 비교 전시하는 것도 생각해 볼 수 있는 문제다. 국내의 모조품 제작기술의 수준과 능력으로 볼 때 동아시아 민족 테마는 충분히 가능성이 있어 보인다. 대전시는 자연사박물관도 좋지만 다른 국립박물관과는 차별화된 국립박물관 유치에 나서는 것이 보다 더 합리적이라는 판단이다.
저작권자 © 충청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