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한 청주 모충동 천주교회 주임신부

우리 속담에 '열길 물속은 알아도 한길 사람의 속은 모른다'는 속담이 있다.? 보는 관점에 따라 다르겠지만 나는 이 속담이 믿음에 대한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속담을 불신의 대명사로 쓰고 있다.? 즉 사람 속은 모르니 믿지 말라는 의미가 이 속담에 담겨 있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 곰곰이 생각해 보자.? 말일 한길 사람의 속을 안다면 그것은 지식인가 아니면 믿음인가?

우리는 곧잘 '앎과 믿음'을 혼동한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앎의 영역과 믿음의 영역은 서로 다르다는 사실이다.? 즉 노력해서 아는 것은 지식의 영역에 속한다.? 그러나 아무리 노력해도 알 수 없는 것은 지식의 영역이 아니라 믿음의 영역에 속하는 것이다.? 따라서 열길 물속은 지식의 대상이요, 한길 사람의 속은 믿음의 대상이 되는 것이다.?

사실 우리는 서로의 마음속을 알지 못한다.? 그러면서도 상대를 너무나 잘 아는 양 착각하며 살아간다.? 하지만 이 착각이 어쩌면 서로 믿고 의지하며 살아가는 인간 공동체의 삶을 유지하게 하는 원동력일지도 모른다.? 즉 함께 살아갈 수밖에 없는 존재가 인간이라면 그 삶을 가능케 하는 것은 확실한 지식이 아니라 착각일 수도 있는 믿음인 것이다.

물론 살아가다 보면 사람을 잘 못 믿어서 사기를 당하거나 배신을 당하는 사람들도 있다.? 더구나 사랑하고 믿었던 사람의 배신은 큰 상처를 가져다주며, 그 상처에서 벗어나기까지 우리는 많은 아픔을 겪기도 한다.

그러나 믿지 않고는 살아갈 수 없는 것이 또한 우리의 삶임을 부정할 수도 없다.? 특히 부부의 관계가 그러하다.? 부부의 관계는 사실 여부를 떠나 서로 얼마만큼 믿고 의지하느냐가 더 중요하다.? 즉 부부의 관계는 진실해야 하지만 그 진실을 얼마만큼 믿어 주느냐가 더 중요한 요소인 것이다.

사실 믿음이 없다면 이 사회라는 공동체는 단 한순간도 지탱해 나갈 수 없다.? 예를 들어 보자.? 우리는 매일 아무런 의심 없이 세끼 밥을 먹는다.? 혹시 이 음식에 독이 든 것이 아닐까 생각하며 밥을 먹는 사람은 없다.?

만일 우리가 음식에 독이 들었는지 음식 만드는 사람을 의심한다면 우리는 단 한 수저의 밥도 제대로 입안에 떠 넣을 수 없는 것이다.? 믿지 못하고 한없이 의심한다면 집이 무너질까 두려워 집안에 들어갈 수도 없을 것이고 땅이 꺼질까 두려워 밖에 나다닐 수도 없을 것이다.? 사람들은 의심하면서도 서로 믿기 때문에 하루하루를 살아갈 수 있다 하겠다.?

그런데도 세상 사람들은 믿는 사람을 어리석게 보고 많이 아는 사람만을 똑똑하다고 한다.? 아니 세상의 모든 것을 다 아는 척 하는 사람, 그래서 손에 집어 주는 것을 제외하고는 모든 것을 의심하는 사람만을 똑똑하다고 생각한다.? 반면 착해서, 혹은 사람을 의심할 줄 몰라서 속아주면 어리석은 사람으로 취급해 버린다.?

물론 모든 인간은 존엄하기에 누가 더 가치 있는 존재인지를 따진다는 것은 무의미한 일일 것이다.? 그러나 굳이 가치를 따진다면 믿지 않는 똑똑한 사람보다는 서로를 믿어주는 어리석은 사람이 함께 더불어 살아갈 수밖에 없는 이 세상에서는 더 소중한 존재이지 않을까?

아무리 귀한 보물이 있다 하더라도 그 보물의 가치를 모르는 사람에게 있어서 보물은 아무런 의미를 갖지 못한다.? 믿음이라는 보물도 역시 그럴 것이다.? 과연 나는 얼마만큼 내 주변의 사람들을 믿으며 살아가고 있는지 생각해 볼 일이다.?

또한 나는 내 주변의 사람들에게 얼마만큼 믿음을 주며 살아가고 있는지 생각해 보아야 하겠다.? 비록 속는 한이 있다 하더라도 한번쯤은 믿어 줄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다.? 더 나아가 믿음을 주는 이웃이 나에게 있어서 가장 소중한 보물임을 잊지 말아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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