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관 건양대 교수

전세계가 온통 전쟁의 열기 속으로 빠져드는 느낌이 든다. 그러나 반전 시위의 위세도 만만치 않다.

전쟁을 하는 이들이나 촛불 시위를 하는 이들이나 모두 평화를 내세우고 있다.

새봄이 되어 대전에도 여러 공연들이 이어지고 있다. 댄스팀, 악극, 뮤지컬 등 국제적 규모의 공연들이다. 그런데 특이한 것은 대전이 다른 어느 도시보다 관객이 많이 들고 있다는 것이다.??

며칠 전 뮤지컬 공연을 보러갔다.

공연을 보고 나오는 한 아가씨가 "너무 흥분되던데요. 역시 젊은 배우들이 나와 춤추고 노래하니 마음이 쿵쾅쿵쾅 뛰더군요"라고 말했다.

그런데 옆에 있던 청년이 "혼자만 그러면 뭐해요? 역시 대전 사람들은 호응이 안되요. 대전에서 공연을 안하려고 하는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는 것"이라고 느닷없이 핀잔을 주었다.

함께 호응해야 하는 무대에서 반응이 좀 부족해 마음이 몹시 상했던 모양이다.

'공연의 기쁨을 나 혼자 누려도 된다'는 논리와 '함께 하는 기쁨이 시민의 자존심을 지킨다'는 논리의 싸움이다.

대량살상 무기를 근절하자고 하면서 대량살상 무기를 마구 퍼부어야 하는 전쟁 논리와 어느 부분은 닮아 있다는 생각이 든다. 감동이 울려오지 않는 데 억지로 소리 지르라거나 몸을 흔들라는 건 아닐 것이다.

스스로 기분 좋으면 환호성도 울리고 힘차게 몸을 흔들기도 하며 함께 즐거워하고 함께 놀아줘야 하는 것이 무대예술 관객의 예의일 것이다.

이탈리아 오페라 극장 앞에 가면 지금도 오렌지 장수들이 있다고 한다.

오렌지 하나씩 사들고 들어가 공연이 형편없거나 맘에 들지 않으면 무대에 집어 던지라는 뜻이 들어 있다고 한다.

관객이 무대에 오렌지를 던질 권리가 주어졌다고 하면 흥겨울 때 소리지르고 동화돼야 하는 의무도 있어야 한다.

"사실은 저도 좀 쑥스러울 때가 있어요. 일어나서 박수치고 싶은데, 일어나도 되는지, 소리질러도 되는지, 자신이 없을 때가 있거든요."

"결국 대전 사람들만 무시당하잖아요. 대전의 공연을 다시 못찾겠다는 말을 들으면 기분 좋아요?"

낯모르는 청년과 아가씨의 설전은 씁쓸함만을 남기고 멀어져 갔다.

관객들에게 무대를 보고 반응이 시원치 않다든지 왜 함께 몸을 흔들지 않느냐고 탓할 수는 없다.

하지만 관객은 작품을 즐길 권리도 있지만 작품을 완성해 줄 의무도 있는 것이다. 다른 어느 도시보다 관객이 많이 드는 대전, 반응 역시 다른 도시보다 확실하다는 편을 들을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기쁠 때 소리지르고 즐거울 때 흔드는 솔직한 무대 매너를 키워보는 것이 필요하다.

차제에 공연장에서는 나름대로 관객의 분위기를 이끌 수 있는 도구나 장치를 하나쯤 마련해 둘 것을 권하고 싶다. 무대예술은 관객이 차지하는 비중이 크다.

관객이 공연의 분위기를 만들며 결국 공연의 성패를 가름하는 역할을 하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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