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고향 충청도]조완규 전 교육부 장관(대전 출신)

"내 고향 충청도를 생각하면 충절과 학문의 고향이란 점에서 늘 자부심을 갖지요"

대전 대덕이 고향인 조완규 전 교육부장관(전 서울대 총장)(78)이 태어난곳은 황해도 재령이다. 선친인 조용순(趙容淳) 전 법무부장관(7대, 재임기간 1954.6-1955.9)이 판사로 재직 때 전근이 잦아 조 전 장관은 어린시절 아버지를 따라 전국을 순회했다. 조 전 장관은 32대 교육부 장관을 1992년 1월부터 1993년 2월까지 역임한바 있어 부자(父子)가 2대에 걸쳐 40년 '터울'로 법무부 장관과 교육부 장관을 지낸 셈이다.

▲ 생물학을 전공한 조 전 장관은 20대에 서울대 교수로 임명되면서 두번의 미국유학 등을 통해 얻은 지식을 바탕으로 우리나라 생물학의 주춧돌을 세웠다. 조 전 장관은 80세를 내다보는 나이인데도 생물학에 대한 애정은 식지 않았다."생물학은 오묘한 생명현상을 다루는 학문입니다. 같은 방법을 이용한다고 해서 반드시 같은 결과가 나오지는 않습니다. 결국 생물학은 확률의 학문이라고 해도 좋을 것입니다. 연구 결과를 100% 가깝게 접근시키는 것이 생물학의 연구 목적이라 할 수 있습니다."
1928년생인 조 전 장관은 평양에서 초등학교에 입학했고, 전남 순천으로 옮겨 5학년까지, 그리고 다시 황해도 해주로 옮겨 1945년 해방 때까지 그 곳에서 중학교를 다녔다. 해주 동중 같은 반 친구로 정원식 전 총리가 있다. 그 뒤 월남하여 고향인 대전으로 옮겨와 대전중학교(현 대전고)를 졸업했다. 1946년 서울대학교에 입학하면서 서울생활을 시작하게된다.

"선친의 빈번한 전근때문에 전국을 순회하게 됐지만 우리 집안은 선대로부터 대덕 진잠에서 생활터전을 다져왔고 선친 내외분뿐 아니라 선대 대대로 모신 선영이 대덕에 있지요. 선친은 대전 삼성초등학교 제1회 졸업생입니다. 조부영 전 국회부의장이 우리 일가에요.남북한을 넘나들며 초등학교를 다닌 셈입니다. 대전중학교 교장을 역임한 이해종선생은 중학교 때 가깝게 지낸 동창입니다"(웃음)

생물학계의 태두로 자리매김한? 조 전 장관의 서울생활은 서울대학교 예과 입학 때부터 시작하지만 광복 후의 혼란기와 6.25 전쟁의 와중에서 '생활고'는 그 당시 월남한 '젊은이'들과 다를바 없었다. 거의 '고학'으로 학교를 다니다 보니 고무신 장사, 감 장사는 물론이고 여러가지 '돈되는 일'을 했다. 먹고 살기 어려운 시절이었다. 해주 동중 동창 몇이서 시작한 자취생활도 만만치가 않았다. 월남 피난민에게 15일마다 배급하는 통밀을 밀가루로 제분하여 수제비를 빚어 끼니를 때우며 견뎠다. 그러면서도 조 전 장관은 1952년 부산의 임시교사에서 유일하게 생물학을 전공한 이학사학위를 수여받는다. 동급생이 20여 명이었지만 6.25 때 행방불명, 납치, 피살, 국군 또는인민군으로 징발되는 바람에 조 전 장관만이 졸업할 수 있었다.

생물학이 생소했던 당시의 국내 상황에서 조 전 장관은 20대에 서울대 교수로 임명되었고, 두 번의 미국유학 등을 통해 우리나라 생물학의 주춧돌을 세운다. 지난 13일 서울 구로구 대림오피스밸리 사무실에서 만난 조 전 장관은 80세를 내다보는 나이인데도 생물학에 대한 애정은 식지 않아 보였다.

조 전 장관은 '한국 바이오산업협회 회장', '서울과학종합대학원 명예총장', '고촌학원재단 이사장', '국제백신연구소 한국후원회 상임고문'의 직함과 함께 서울대 명예교수이기도 하다.

"생물학은 오묘한 생명현상을 다루는 학문이지요. 같은 방법을 이용한다고 해서 반드시 같은 결과가 나오지는 않습니다. 유학시절 미국에서 성공한 실험을 귀국 후 서울대 실험실에서 똑 같은 방법으로 수행해도 미국에서 얻은 결과와 똑같이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결국 생물학은 확률의 학문이라고 해도 좋을 것입니다. 연구 결과를 100% 가깝게 접근시키는 가가 생물학 연구의 목적이랄 수도 있습니다. 역설같지만, 어째서 같은 결과가 나오지 않는가를 연구하는 것도 생물학의 중요한 목표가 될 수 있습니다. 말하자면, 실패의 이유를 찾아 내는 것도 생물학의 일부분이지요" (웃음)

'생물학의 어려움'에 이야기가 이르자 후배인 황우석 교수에 대한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이어진다."황 교수가 배아줄기세포 연구에 있어서 파이오니아임은 분명해요. 다만 논문조작에 대해서는 논문의 제1저자로서 책임을 면할 길이 없습니다. 황 교수로서는 불행한 일입니다"

조 전 장관은 그러나 우리나라 생물학 발전과 BT로 불리는 생명공학, 그리고 바이오산업에 대해 밝은 전망을 하고 있다. 우리나라 생물학 수준이 이제는 세계와 '어깨를 겨루는' 반열에 올랐다는 자신감도 보였다. 조 전 장관은 특히 젊은 과학도들이 창의성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도록 인프라를 구축하고 환경만 조성해 준다면 쉽게 선진국에 진입할 수 있을 것이라는데 '방점'을 찍었다.

"배아줄기세포 연구나 성체줄기세포 연구는 생명공학의 한 부분일 뿐 입니다. 전체적으로 생명공학 수준은 과거에 비해 크게 발전해 이미 세계 수준에 이른 분야도 있고 또 따라잡아 가고 있습니다. 특히 대학, 연구계에 있는 과학자들은? 대다수가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 명문대학에서 공부한 총명한 학자들입니다. 이들에게 마음 놓고 연구할 수 있는 여건을 제공해야 합니다. 머리만 가지고는 안 되는 것 아닙니까. 연구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조 전 장관에게 '충청도 젊은이들에게 조언해 달라'고 요청하자 잠깐 사이를 둔 뒤 "어느 분야에 종사하든 성실하며 역사에 뭔가 남길 일을 해야 하고 후세 사람으로 부터 존경받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 고장 선조들의 충절과 선비정신을 이어가길 바랍니다. 좋아하는 좌우명은 '덕승지(德勝智)'라는 글귀입니다. '덕이 잔 꾀보다 낫다'는 뜻입니다. 덕은 리더로서 갖추어야 할 으뜸가는 덕목일 것입니다" 라며 가벼운 웃음으로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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