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원섭 지방부장

"선거사무실 건물 외벽에 대형 현수막을 내걸고, 기초의원 예비후보자와 배우자, 그리고 사무장이 돌리는 명함이 고작인데 건네주는 명함형 홍보물조차도 휴지통으로 직행되니 무관심한 유권자들에게 어떻게 파고 들어야 하나 걱정이 태산입니다.

또 유권자의 관심은 온통 지난 12일부터 시작된 각 당의 시·도지사 후보를 뽑기 위한 경선전에 쏠려 있고 당 지도부 역시 경선 흥행 성공 여부가 지방선거 판세에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판단, 총력을 기울이고 있으니 기초의원 예비후보자는 그저 답답합니다."

5·31 제4회 전국동시지방선거를 40여일 정도 남겨 놓고 있는 어느 기초의원 예비후보자의 한숨섞인 푸념이다.

지난 1995년 4대 지방선거가 실시되면서 11년째 접어든 풀뿌리 민주주의라고 일컫는 지방자치가 유권자의 철저한 외면 속 최대의 위기를 맞고 있다.

이렇게 된 것은 이번 선거부터 실시되는 기초의원 정당공천제도가 사단이기 때문이다.

'정당 공천 = 당선'이란 등식이 성립한다는 인식이 팽배, 자격도 갖춰지지 않은 사람들이 인맥이나 계파를 총동원, 공천을 받기 위해 줄을 서거나 상대방을 비방하고 흠집내는 이전투구(泥田鬪狗) 행태는 중앙정치를 그대로 옮겨왔다.

지역구 의원이나 당원협의회장이 공천에 결정적 영향을 미치게 됐으니, 지역의 힘있는 국회의원에 잘보일랴, 중앙당 눈에 들랴 눈치보며 하는 줄타기는 그야말로 눈물겹다.

지방의원 유급화로 평소 지방정치에 관심이 없던 인사들이 이번 선거에 대거 출마, 마치 지역의 일꾼인냥 야단법석을 떨고 있지만 과연 이들이 운좋게 당선(?)된 후 단체장들의 제왕적 행태에 대해 제대로 견제나 할 지, 실질적인 행정·입법 등을 책임지고 처리할 전문지식이나 있는 지 의문스럽기까지 하다.

한마디로 이번에 시행된 정당공천제는 풀뿌리 민주주의인 지방분권과 정면으로 배치되고 있다는 인상이다.

이에 대한 부작용을 우려한 모 의원은 "시장·군수뿐 아니라 기초의원까지 정당공천을 확대한 것은 인재의 자유로운 등용을 막으며 지방을 중앙의 정치이념 논리로 재단하고 시장·군수는 물론, 기초의원까지 중앙정치의 수족으로 부리면서 지방자치를 위축시키려는 의도로 밖에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그는 또 "중앙과 지방의 역할과 기능에 따른 민주적이고 수평적 사고에 역행하는 퇴행적 행태의 전형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과연 지역의 작은 정치를 하면서 기초의원의 책무이자 기본정신인, 시민을 존중하고 지역 가치를 소중히 해야 한다는 명분이 결코 타협의 대상이 될 수 있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야의 이해타산에 의해 잘못 탄생된 기초의원 정당공천제.

지방행정과 재정, 문화복지, 도시건설 등 각 분야에서 집행부를 견제할 만한 식견과 전문성을 가진 사람 중에 연고주의에 의한 지역색을 극복하고 정당의 색깔에서 자유로우며, 어느 계층의 시민과도 눈높이를 같이할 수 있는 후보자를 유권자는 원하는데, 기초의원까지 중앙정치의 수족으로 부리면서 줄을 세우는 것은 분명 지방분권에 역행하는 것이다.

잘못된 제도는 과감하게 바꿔야 한다. 그래서 이제라도 국민의 정치불신을 해소하고 진정한 민주주의 꽃이라는 풀뿌리 민주주의를 꽃피워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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