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사 논설고문

세자 시절에 원(元)나라에 가 있던 고려 26대 충선왕(忠宣王)이 부왕인 충렬왕(忠烈王)의 서거로 급히 귀국하게 됐을 때의 이야기다. 충선왕은 원나라에 있을 때 연화(蓮花)라는 여인을 가까이하고 있었는데, 급거 귀국길에 오르게 되자 난감하게 됐다. 게다가 신하들은 보잘것없는 여인을 거느리고 갈 수는 없다고 권하는 바람에 이별은 불가피하게 됐다.

그러나 충선왕은 연화를 잊을 수 없어 신하 가운데 한 사람인 이제현(李齊賢)에게 연화의 동정을 살펴보고 오라고 일렀다. 이제현이 가던 길을 돌아서서 연화를 찾으니 오로지 충선왕을 연모한 나머지 거의 병자가 돼 있었다. 그러나 이제현은 곧이곧대로 아뢸 수가 없었다. 충선왕이 사실을 안다면 어떤 사단이 벌어질지도 몰라 시치미를 떼고 연화가 술집에서 젊은이들과 노닥거리고 있더라고 고했다. 이제현의 거짓말이 주효해서 충선왕은 귀국길을 재촉해 왕위에 오를 수 있었다.

유명한 문장가로 문하시중(門下侍中)을 지낸 이제현이 둘러댄 말은 우국충정에서 우러난 거짓말이어서 크게 탓할 일이 아니다. 훗날 이제현이 이실직고하자 충선왕은 "나라와 나를 위한 것이니 어찌 탓하리오"하고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그러나 세상에는 충선왕 고사에 나오는 말처럼 선의의 거짓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어린이의 사소한 변명에서 시작되는 거짓말부터 대통령을 포함한 고위 공직자의 언행 불일치에 이르기까지 거짓말의 형태는 가지가지다.

물론 인류의 역사는 거짓말로 점철된 역사란 말이 있는 것처럼 거짓말은 한국인만의 전유물도 아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법정에서의 위증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며, 일제는 관동대지진이 발생하자 유언비어를 퍼뜨려 무고한 한국인을 수없이 죽이는 참극을 자행하기도 했다. 우리는 지금 갖가지 거짓말이 판치는 거짓말 공화국에서 살고 있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짓말 불감증에 걸려 있다는 것이 문제점이다.

우리 나라 고위 공직자의 거짓말은 어제오늘만의 일이 아니며, 또한 습관적이고 너무 뻔뻔하다는 평가를 받을 만하다. 지난 92년 대선에 실패한 DJ는 '정계은퇴'를 선언했고 그러한 약속을 두세 차례 번복까지 했지만 95년 7월 "변명하지 않겠다"는 한마디 말을 앞세우면서 정계복귀로 돌아섰다. 92년 대선에서 '재임 중 쌀을 한 톨이라도 수입하면 대통령직에서 물러나겠다'던 YS는 쌀을 수입하고도 물러나는 일이 없었다.

기업인의 경우도 예외가 아니어서 '승용차 사업에는 진출하지 않겠다'던 삼성이 말을 바꾼 것도 기억에 새롭다. 무슨 무슨 게이트가 생길 때마다 거짓말을 쏟아 부으면서 진실은폐에 급급했던 것도 현기증이 날 정도다. 최근에는 대북 송금 의혹 사건과 관련, 이 말 다르고 저 말이 달라 국민이 혼란스러워하는 것도 그 중 하나다.????

우리가 기억하고 있는 워터게이트 사건은 어느 한 쪽에서 다른 쪽을 도청했다는 문제성과 함께 끝까지 이를 숨기려 했던 닉슨의 거짓말이 미국인을 분노케 했던 것이다. 서양에선 정직하지 못한 정치인은 곧 파멸을 의미한다. 그러나 한국 사회는 거짓말에 관대한 편이어서 일종의 도덕 불감증에 걸려 있는 상태다. 거짓말이 잘못인줄 알면서도 이를 경계하지 못하는 것은 우리 사회가 지니고 있는 병리현상인 것이다. 오죽했으면 '거짓말'이란 제목의 영화까지 등장했는지 생각케 한다. '언필신'(言必信)이라고 했던가. 말에는 반드시 신의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 기본적인 덕목이다.

지도층 인사뿐 아니라 보통사람에게 이르기까지 거짓말로부터 자유로워지도록 자세를 가다듬어야 할 때다. 거짓말 불감증에 걸려 있는 우리 사회는 잘못된 의식구조가 지배하는 사회로 비쳐지게 마련이다. 거짓말에 감염된 사회는 악의 온상이나 진배없는 사회라는 데 인식을 같이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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