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 원 서원대 교수

허 원 교수 약력

▲1955년 경남 마산 출생

▲서울대학교 동양사학과 및 대학원졸업

▲연세대학교 사학과 대학원졸업(문학박사)

▲서원대학교 역사교육과교수(1989~현재)

▲서원대학교 한국교육자료박물관장, 도서관장, 기획처장 역임

▲충북환경운동연합 상임대표(2005~현재)

▲원흥이 생명평화회의 공동의장(2003~현재)

경주 최부자는 만석군으로 10대 300년 동안 부를 지켜온 집안으로 유명하다.

우리 옛 속담에 '3대 부자 없고 3대 거지 없다'는 말이 있듯이 부자가 3대를 이어가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러면서도 3대 부자는 되어야 제대로 된 부자라 할 수 있다고 하여 모든 세상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부자이지만 부자로서 인정받으며 욕먹지 않고 살아가기란 결코 간단치 않았다.

3대도 지키기 힘든 부를, 그것도 만석꾼의 재산을, 10대 300년 동안이나 유지하면서 주위 사람들의 존경까지 받은 경주 최부자집의 비밀은 무엇이었을까.

경주 최부자 가문은 단순한 부잣집이 아니었다. 9대에 걸쳐 진사를 지낼 만큼 학식과 덕을 갖추었으면서도 의도적으로 벼슬길에는 나아가지 않았다. 벼슬을 이용하여 부를 늘리거나 정쟁에 휘말리지 않고 오로지 의로운 방법으로 재산을 모으고 제대로 관리하여 정작 씌여할 때 씌야할 곳에 적절히 쓰기 위함이었다.

의를 잃으면서 모은 재물은 얼마 못가 없어지고 필요한 곳에 재물을 나눠 주어도 집안의 재물은 줄지 않는다는 것을 익히 터득하고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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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물은 분뇨처럼 한 곳에 모아두면 악취가 나서 견딜 수가 없지만 골고루 사방에 흩어주면 농작물의 좋은 거름이 되는 법이다. 재물을 모으기만 하고 좋은 곳에 쓰지 않으면 똥통에 들어 앉아 있는 것과 다름없다.' 어느 선사의 이런 말씀을 재물보다 더 귀하게 간직한 것이 경주 최부자집이었다.

본시 재물뿐 아니라 세상 만물 모두가 움직여 원활하게 소통되어야 제 기능을 발휘하고 탈이 없기 마련이다. 통해야 할 것이 통하지 못하고 한 곳에 고이거나 쌓이게 되면 썩거나 막혀 문제가 생긴다.

우리 인간의 몸도 예외는 아니다. 몸속의 기(氣)와 혈(血)이 제대로 통하지 않으면 고통이 생기고 병이 든다. '불통하면 아프고 통하면 아프지 않다 (不通則痛 通則不痛)'는 것은 누구나 익히 알고 있는 동양의학의 명제가 아니던가.

재물도 물 흐르듯이 흘러 제가 가 있어야 할 곳에 가는 것을 일러 유통이라 하지 않는가. 시장경제는 곧 유통경제요, 유통을 주도하는 가진 자들은 이 흐름이 원활히 이루어지도록 할 사회적 책무를 지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이치를 깨닫고 실행하는 부자들은 제 혼자 배부르지 않고 세상과 더불어 부요함을 누리는 자니 어느 재물이 그를 멀리 할 것이며 어느 백성이 그를 흠모하지 않겠는가.

一. 사회의 양극화 해소와 변화

요즘 들어 사회의 양극화 해소를 입에 올리는 사람들이 부쩍 늘고 있다. 고소득층과 저소득층 대기업과 중소기업 정규직과 비정규직 사이의 격차와 갈등이 우리 사회의 심각한 구조적 모순이고 시급히 해결해야 할 과제라는 인식이다.

이러한 식의 문제제기 자체가 오히려 사회갈등을 부추기고 있다는 비판도 있지만 지금 우리 사회 도처에 심상치 않은 조짐들이 나타나고 있다는 데는 별다른 이의가 없는 듯하다. 다만 그러한 난제의 책임소재와 해결방식을 놓고서는 계층 간에 집단 간에 현격한 인식차이를 보이는 양상이다.

양극화 해소의 해법을 놓고 각계의 전문가뿐 아니라 정치인, 언론인들까지 저마다 방안을 내놓고는 있지만 국민들의 눈에는 신통치가 않다.

우리들 보통 사람들도 극과 극은 서로 통한다고 입버릇처럼 말해 왔는데 양극화해소가 왜 이리 어려운 것일까.

그렇다면 극과 극은 어떻게 통한다는 말인가.

세상만물의 변화와 발전의 이치에 대해 설파하고 있는 '주역', '계사'편을 보면, 모든 사물은 발전하여 극한에 이르러 막히게 되면 변화가 생기고 변화가 이루어지면 다시 통하여 발전하게 된다고 한다. 주역의 유명한 명제인 궁즉변(窮則變)이요 변즉통(變則通)의 의미이다.

극에 다달아 더 이상 탈출구가 없을 때는 변해야 한다. 변하지 않으면 꽉 막혀 더 이상 발전하지 못하고 정체하거나 탈이 생긴다. 이 변화는 나 홀로의 변화는 아니다. 한 여름의 뜨거운 양기가 극에 이르러 더 이상 나아가지 못할 때 변화를 생기게 하는 것은 차가운 음기와의 결합이다. 음양이 만나 한 데 뒤엉켜 변화를 시작하는 것이 삼복이라 할 수 있다.

기후 뿐이 아니다. 한여름의 양기가 제 아무리 뜨거운 열기로 작물들을 자라게 할지라도 결국 곡식을 단단히 여물게 하는 것은 가을의 음기이다.

부와 권력을 가진 자들이 양지에서 제 아무리 기세좋게 행세하고 다녀도 빈한하지만 음지에서 묵묵히 지탱해주는 서민들이 없다면 그들의 부와 권세가 어떤 결실을 맺을 수 있을까.

서로 상극처럼 보이는 음양에도 이처럼 서로 의존하고 보완하는 속성이 있는데 많이 가진 자와 적게 가진 자 사이에서랴.

음양이 변화를 이루기 위해서는 서로가 서로를 받아들여야 한다. 서로가 서로를 향해 한걸음 두걸음 다가가면 그 변화의 속도는 기하급수적으로 빨라진다. 불과 얼음이 멀리 떨어져 있으면 얼음이 결코 녹지 않지만 다가갈수록 얼음은 급속히 녹기 마련이다.

세상의 모든 변화는 제 혼자 저절로 이루어지는 법이 없다. 음양의 변화 이치가 그러하듯 한 사회, 기업, 학교, 가정 모두가 그 집단 내부 구성원의 상호작용에 의해 변화해 간다.

눈부신 속도로 기술발전이 이루어지고 있는 21C는 그야말로 변화와 발전의 시대이다. 뒤떨어진 것, 불필요한 것, 한계에 이른 것만이 아니라 그렇게 될 가능성이 있는 것까지 과감히? 폐기하거나 변화시키지 않으면 살아남기 어려운 시대다.

수년전 삼성의 이건희회장은 마누라를 빼고는 모든 것을 바꾸자는 당시로서는 가히 충격적인 경영혁신방침을 내놓은 적이 있었다. 그 결과 삼성은 세계일류기업으로 급부상했지만 이건희회장 일가를 비롯한 삼성의 최고 경영진은 요즘 곤욕을 치루고 있다.

모든 것을 바꿔야 산다고 직원들을 독려했던 이건희회장도 정작 그 스스로는 바꿔야 할 것을 제대로 바꾸지 못했기 때문이다. 불투명 경영과 편법적인 후계구도 구축이란 재벌기업의 잘못된 관행을 과감히 바꿀 수 있었다면 삼성은 명실상부한 세계초일류기업으로 국민의 사랑을 받는 모범기업으로 우뚝 섰을 것이다.

과거 사카린밀수사건으로 곤욕을 치렀던 고 이병철회장이 자신의 아픈 전철을 그의 아들이 또 다시 밟고 있는 것을 지하에서라도 안다면 뭐라고 하실까.

一. 과거사 정리와 역사의 지혜

정부에서 주도하고 있는 의욕적인 과거사 정리작업을 둘러싸고 논의가 분분하다. 일제시대 친일반민족행위규명과 해방 후 정권차원에서 저지른 각종 의혹사건에 대한 규명은 여러 가지 반향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

나라의 정기를 바로 세우기 위해서 이러한 작업이 필요함은 누구도 부인못할 터이지만 그 작업은 신중하고 균형감있게 진행되어야 한다.

역사적 사건의 평가는 오늘의 입장에서가 아니라 당시의 상황속에서 이해하고 평가하되 그 일을 행한 사람이 어떤 의지를 가졌고 또 그 결과는? 어떠했는가를 함께 고려하여 평가해야 한다.

중국 고전인 '열자'에는 이런 이야기가 실려있다.

옛날 한 선비가 수도로 가다 산 속에서 도적을 만나 짐과 옷을 다 빼앗기면서도 아까운 기색없이 태연했다. 도적이 당신은 어찌 그리 태연할 수 있냐고 물었다. 그러자 선비가 재물이란 본시 인간을 위해난 것인데 그 재물 때문에 사람이 목숨을 잃는대서야 본말이 전도된게 아니겠냐고 말했다. 선비의 인품에 감동한 도적들은 틀림없이 수도에서 큰 벼슬을 할 인물로 여기고 후환이 두려워 죽여버렸다고 한다.

이 일을 전해들은 한 장똘뱅이가 짐을 싣고 산을 넘다 그 도적들에게 다시 붙들렸다. 장똘뱅이는 통곡하며 도적들의 바지가랭이를 붙들고 물건을 돌려달라고 애원했다. 도적들은 포졸들에게 발각될까 두려워 장똘뱅이를 칼로 베고 사라졌다.

장똘뱅이는 선비와 자신이 다른 인물인데도 자신이 선비처럼 도적의 눈에 비쳐 죽임을 당할까봐 선비와는 정반대의 행동을 한 것이다. 역사의 지혜는 과거의 사건을 과거 상황 속에서 있는 그대로 분석하여 교훈을 얻는 것이지 과거 속에 현재의 자신을 대입하거나 그 사건을 현재로 끌어와서 평가하는 것이 아니다. 올바른 역사인식은 미래를 바라볼 수 있는 언덕이 되지만 잘못된 역사인식은 또 다시 실패를 몰고 오는 함정과 같은 것이다.

과거사 진상규명에서 얻는 결실이 우리의 미래를 내다볼 수 있게 하는 지혜의 언덕이 될지 반대로 함정이 되어 또다른 실패의 단서가 될지는 우리의 판단에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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